신경훈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신경훈기자 nicerpeter@hankyung.com
“3차원(3D) 디자인 기술은 아기 기저귀부터 우주를 탐사하는 로켓까지 모든 곳에 녹아 있습니다. 이제는 거대한 도시도 다쏘시스템의 3D 기술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조영빈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사진)는 지난 11일 서울 삼성동 다쏘시스템코리아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다쏘시스템은 세계적인 3D 디자인 소프트웨어 전문업체로 꼽힌다. 1999년 제품 설계부터 생산을 한 번에 관리하는 제품수명주기관리(PLM) 개념을 최초로 도입해 업계의 표준용어로 확립했다. 글로벌 매출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2013년 20억6600만유로(약 2조6485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32억2800만유로(약 4조1300억원)로 4년 만에 60% 이상 성장했다.

다쏘시스템은 3D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스마트시티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 도시 전체를 디지털화하는 ‘디지털 싱가포르’ 사업을 완료하고 배관, 인터넷 케이블 등의 시설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중국 광저우, 프랑스 렌에서도 스마트시티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내에서도 스마트시티 사업에 도전할 계획이다. 조 대표는 “다쏘시스템은 한국 굴지의 제조업체들과 함께 성장해왔다”며 “스마트시티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과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다쏘시스템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기업 혁신을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봅니다. 기술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효율적인 비즈니스 운영을 위해 고민하다 보니 이렇게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단기적 이익만 좇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여러 기업과 꾸준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매출 성장세로 이어졌습니다.”

▷서비스 이름을 ‘3D익스피리언스’라고 부르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많은 사람이 3D 설계를 단순히 2차원 도면을 입체적 형태로 옮기는 작업으로 생각합니다. 저희는 단순한 변환 작업을 넘어 제품의 설계부터 사용 후 폐기되는 단계까지 모든 과정을 가상으로 제공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직접 시제품을 제조하고 비용을 낭비할 필요 없이 가상의 공간에서 마음껏 실패하고 도전해보라는 취지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다쏘시스템은 2012년 PLM이란 용어를 버리고 3D익스피리언스라는 비전을 발표했습니다. 3D 설계 기술을 광범위하게 적용해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포부와 철학을 담았습니다.”

▷3D 기술을 바탕으로 금융, 생명공학 분야까지 진출하고 있습니다.

“항공우주, 자동차, 조선처럼 전통적인 제조업이 다쏘시스템의 주 활동 분야입니다. 최근엔 반도체, 금융, 유통, 소비재, 생명공학, 천연자원 산업 분야로도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3D익스피리언스를 보험·금융 상품을 개발, 관리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의료·제약 분야에도 활용됩니다. 유럽 내 유수의 제약회사들이 다쏘시스템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약효를 가상으로 검증합니다.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적용해 더 정밀한 분석을 할 수 있습니다. 천연자원 분야도 다쏘시스템이 주력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광산을 안전하게 채굴하려면 암석층의 물리적 특성 및 지질 구조를 정밀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다쏘시스템의 3D 기술을 활용하면 광산 전체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 편리하게 작업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기존 주력 분야인 제조업에서는 어떤 기술을 도입하고 있습니까.

“제조업계의 화두는 단연 스마트팩토리입니다. 이 역시 다쏘시스템이 주력하는 사업입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이를 공장자동화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마트팩토리는 제조과정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까지 모두 포함한 개념입니다. 다쏘시스템이 제공하는 3D익스피리언스는 공장 전체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플랫폼 역할을 합니다. 공장 직원들의 움직임을 파악해 가장 효율적인 업무 동선을 설계하거나, 신체에 무리를 주지 않는 작업 자세를 찾아주기도 합니다. 부서 간 소통도 도와줍니다. 가령 기획부가 생각한 제품과 생산부가 설계한 제품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2차원 도면만으로는 두 부서가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없습니다. 3D 설계는 직관적으로 제품을 볼 수 있는 만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최근 스마트시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3D 기술은 스마트시티에 어떻게 활용됩니까.

“도시 설계는 복잡합니다. 5세대(5G) 통신망, 사물인터넷(IoT) 센서 등 다양한 장비가 도입되는 스마트시티 사업에는 2차원 도면만으로는 도시계획을 수립하기 어렵습니다. 또 여러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가 서로 달라 섣불리 도시 계획을 진행하다가는 사고도 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다쏘시스템은 가상의 스마트시티를 만들 수 있는 ‘3D익스피리언시티’ 솔루션을 개발했습니다. 3D 공간에서 도시 전체를 시뮬레이션하고 시험하며 도시 문제를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통합된 플랫폼을 운영하므로 여러 관계자가 협업할 수 있습니다. 다쏘시스템은 최근 싱가포르 도시 전체를 가상화하는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지하철, 배수관, 케이블선 등을 포함한 지하 디지털화 프로젝트를 추진 중입니다. 이 외에도 프랑스 서북부의 렌시와 중국 광저우시와도 스마트시티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 확정된 사업은 없지만 정부와 협업해 지속가능한 미래도시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난 10월엔 한국 경제에 기여한 공로로 ‘한·프랑스 비즈니스 어워드’를 받았습니다.

“작게나마 한국 산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다쏘시스템은 한국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 반도체, 중공업 분야에서 굴지의 기업들과 함께 성장해왔습니다. LG전자 포스코 같은 대기업부터 작은 중소기업까지 1만 개가 넘는 기업들과 함께해왔습니다. 한국에서 기술 연구개발(R&D)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2009년에는 900억원가량을 투자해 대구 최초의 해외 기업 R&D 센터인 조선해양산업 R&D 센터를 설치했습니다. 한국이 조선 강국이라는 점을 고려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던 R&D 센터를 과감히 이전했습니다. 이 외에도 국내 대학과 산학협력, 대학생 경진대회 지원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쏘시스템이 한국에 진출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내년에는 클라우드와 스마트시티 사업에 더욱 집중할 계획입니다. 보수적이던 엔지니어링업계에도 클라우드 바람이 불고 있어 시장이 빠르게 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영구 라이선스보다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어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스마트시티 사업 역시 내년부터 정부기관들과 협력해 본격적으로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