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원자력발전 주기기(원자로·증기발생기·터빈발전기) 생산 업체로 한국 원전산업을 이끌어온 두산중공업이 1962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여파로 일감이 뚝 끊긴 탓이다. 국내에서조차 외면받는 원자력발전소 공사를 맡기겠다는 나라를 찾기 쉽지 않아 수출길도 사실상 막혔다. 두산엔진 등 알짜 계열사와 두산밥캣 등 관계사 지분까지 팔았지만 경영 여건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두산중공업이 유급 휴직 등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배경이다. 급기야 대표이사가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등 탈원전 정책 충격과 후폭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실적 쇼크’에 김명우 사장 사임김명우 두산중공업 사장(59)은 지난 10일 7200여 명의 전 임직원에게 사임을 알리는 이메일을 보냈다. 지난 3월 대표이사에 취임한 지 9개월 만이다. 김 사장은 두산그룹 내에서 인사관리(HR) 전문가로 통한다. 1987년 두산의 핵심 계열사인 동양맥주(현 오비맥주)에 입사한 뒤 두산 인사기획팀장을 거쳐 2002년 두산중공업 인력개발팀장을 맡았다. 강도 높은 인력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현 상황에 큰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김 사장은 최근 임원들에게 “후배들에게 좋은 회사를 물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두산중공업은 올해 임원을 30%가량 줄인 데 이어 직원 400여 명을 두산인프라코어 등 계열사로 전출시켰다. 일감이 넘치던 2013년 8428명에 달했던 두산중공업 직원 수는 지난 9월 말 기준 7284명으로 13.6%(1144명) 줄었다. 같은 기간 171명에 달했던 임원 수는 84명으로 반 토막 났다. 내년부터는 과장급 이상 전 사원을 대상으로 두 달간 유급 휴직도 시행한다. 김 사장이 이메일에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묵묵히, 열심히 일하고 있는 여러분 곁을 먼저 떠나려고 하니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쓴 이유다.매출, 이익 ‘뚝뚝’두산중공업 원자력 비즈니스그룹(BG)은 2021년 완공 예정인 울산 신고리 5, 6호기를 끝으로 일감이 끊긴다. 정부가 지난해 신규 원전 4기 건설 중단 결정을 내린 탓이다. 2015년부터 원자로 설비 등을 제작해온 울진 신한울 3, 4호기 건설 프로젝트도 지난해 정부가 사업을 중단하면서 ‘올스톱’됐다. 사업이 최종 취소되면 두산중공업은 미리 제작한 기자재에 들어간 비용 4930억원을 고스란히 날리게 될 판이다. 두산중공업의 지난 3분기 영업이익(별도 재무제표 기준)은 작년 3분기보다 85.5% 급감한 60억원에 그쳤다.두산중공업은 한국의 원전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987년 영광 한빛 3, 4호기부터 국내 유일의 원자로 핵심 설비 주계약자로 참여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 등 글로벌 원전업체와 손잡고 해외 시장도 개척했다. 2009년엔 한국전력공사 등과 함께 한국형 원전 모델인 ‘APR1400’을 개발해 20조원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한국의 첫 원전 수출이었다. 2012년에는 10조원에 가까운 매출(9조6272억원)을 기록하며 5948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도 냈다.하지만 탈원전 정책 1년여 만에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올 상반기 기준 두산중공업의 단기 차입금은 2조9643억원에 달한다. 이 기간 이자비용으로만 856억원을 썼다. 두산중공업은 연간 2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야 차입금 이자를 상환할 수 있는 구조다. 이대로라면 경영상의 중대 위기를 맞을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신규 수주가 쪼그라들고 있어 전망도 어둡다. 2016년 9조원을 웃돌던 두산중공업 수주액은 지난해 5조원 수준으로 급감한 데 이어 올 들어선 3조6914억원까지 줄었다.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지속되는 한 해외 원전 건설 수주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전이 지난 8월 22조원 규모의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잃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13조원 규모의 원전사업을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칼리드 알팔리 산업에너지광물부 장관도 이달 초 “미국 기술의 도움으로 원전을 건설하기를 원한다”고 언급하는 등 수주에 빨간불이 켜졌다.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생태계 붕괴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업계의 우려가 쏟아졌다. 11일 국회에서 열린 ‘원전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토론회’에서다.김종두 두산중공업 원자력사업부문 상무는 “원전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주요 협력업체 90여 개가 탈원전 정책 이후 인력을 40% 정도 구조조정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협력업체가 사업을 포기하고 싶다고 호소한다”고 전했다.두산중공업 협력업체인 우리기술의 서상민 전무는 “25년 동안 원전 기술 독립을 이뤄내자는 일념으로 노력해 핵심기술을 개발했는데 돌연 사업을 접으라는 사형 선고가 떨어졌다”며 “1~2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미 매출이 반 토막 났고 인력도 약 20%가 이탈했다”고 전했다.두산중공업과 우리기업은 원전 주요 기자재를 공급하는 회사다. 원전 기자재·설계 업체는 일감 대부분이 신규 원전에서 나오는데 정부가 신한울 3, 4호기 등 6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면서 사정이 급격히 어려워졌다. 그나마 공론화 끝에 건설을 재개한 신고리 5, 6호기 일감은 내년이면 바닥난다.정부는 ‘일감절벽’을 막기 위해 원전 수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수출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서 전무는 “운 좋게 내년 수주를 한다 해도 실제 일감은 3~4년 뒤에야 나온다”며 “그 사이 국내 원전 공급망은 무너지고 외국 기업만 좋은 일 시켜주는 수출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산업 생태계 붕괴는 원전 안전에 치명적이라는 경고도 제기됐다.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기자재 업체들이 줄도산하면 원전 운영 과정에서 필요한 핵심 부품을 어디서 공급할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원전 안전 불안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 전무는 “노후 원전은 설비 개선 투자가 부족하다”며 "발전소 안전 운영을 위한 투자를 대폭 늘려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김 상무는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신한울 3, 4호기만이라도 재개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이런 우려에도 정부를 대표해 토론회에 나온 정종영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과장은 “신한울 3, 4호기 사업은 중단한다는 게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원전 건설에 대한 국민 수용성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점도 고려해달라”며 “하다못해 송전탑을 지을 때도 주민 반발이 크지 않으냐”고 했다. 이에 대해 김재원 국회 에너지특별위원회 위원장(자유한국당 의원)은 “전력 시설에 대한 반발은 외부 세력이 개입한 탓이 큰데 이걸로 수용성 운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토론회를 개최한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은 “에너지 전환은 필요하지만 지금 탈원전 정책은 속도가 너무 빨라 부작용이 크다”며 “원전산업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대안을 국회 차원에서 마련하겠다”고 말했다.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중국 선전시가 지역 소재 기업들의 전기료를 앞으로 3년간 124억8100만위안(약 2조285억원) 감면합니다.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을 중심으로 1만5000여개 기업이 수혜를 입을 전망입니다. 지원을 늘려 더 많은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목표에서입니다. ‘탈(脫)원전’ 가속화로 기업들에 대한 전기료 인상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과 대비됩니다.선전 시정부는 최근 기업들에 대한 전기료 대폭 감면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일반 제조업은 1㎾h당 5.5펀(分, 약 9원), 첨단 업종은 8.5펀(약 14원) 씩이다. 전기료 감면은 11월분 전기료부터 3년에 걸쳐 실시됩니다. 선전시는 기업들의 전력 사용 예상량 등을 근거로 감면에 따른 지역내 기업들의 전기료 부담 감소가 124억8100만위안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전기 사용량이 많은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가장 큰 수혜를 볼 전망입니다. 선전에 8.5세대 LCD(액정표시장치) 공장 두 개를 가동하고 있는 CSOT는 전기료 감면에 따른 비용 절감이 3년간 7억5000만위안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기존 전기료 부담의 75% 수준이죠. 예정대로 내년부터 11세대 LCD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면 전기료 부담 감소폭은 더 클 전망입니다.선전에 본사를 두고 있는 중국 1위 전기차 및 배터리 제조업체 BYD도 계열사에 따라 7~17%의 전기료 부담 감소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중국 5위 배터리업체 BAK 역시 부담이 20% 이상 줄어들며 연 900만위안 이상의 전기료 감소가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대부분의 생산시설을 인근 도시로 옮긴 화웨이도 본사 및 연구소를 중심으로 수혜를 볼 전망입니다.선전시는 특히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지원 절차도 이번 기회에 손봤습니다. 시가 지원 대상 기업과 지원폭을 산정해 전기료 부과 단계에 감면분을 반영하기로 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기업이 먼저 본인이 지원 대상인지 알아보고 복잡한 신청 서류를 제출해야 했습니다.선전시는 전기료 감면을 통해 더 많은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한다는 계획입니다. 기업 활동으로 시 재정이 풍족해진만큼 이를 다시 기업 환경 개선에 투자해 더 많은 기업들이 선전으로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서입니다. 연초 선전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2조2438억위안(약 380조원)으로 인접한 홍콩(2조6626억홍콩달러·약 364조원)을 최초로 앞질렀습니다.기업들은 크게 반겼습니다. BAK의 CFO(최고재무책임자) 거충탄은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거짓말로 생각했다”며 “지원금 신청절차를 없앤 세심함도 돋보였다”고 말했습니다. CSOT의 뤄훙위안 기술담당 임원은 “이번 전기료 감면은 사업 자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수준”이라며 “많은 기업들이 선전에 투자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고 기뻐했습니다.디스플레이와 배터리는 사용 전력량이 많은 대표적인 첨단 산업이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의 대형 공장 한 곳이 매년 수천억원의 전기료를 지출합니다. CSOT가 공격적으로 LCD 설비를 확충하며 LG디스플레이 등의 LCD 사업부문은 수익성 감소에 직면해 있습니다. BYD와 BAK는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LG화학 및 삼성SDI와 경합 중입니다.이런 가운데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심야 시간부터 산업용 전기료를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습니다. 중국 현지 한국 기업 관계자는 “한국이 첨단 제조업에서 언제까지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선전시는 “선전에 공장을 지으면 외국 기업에도 동일한 전기료 감면이 적용된다”며 “외국 기업도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선전=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