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유류세(油類稅) 인상으로 촉발된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고 ‘불통(不通)’에 대해 사과했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전기·가스 요금 동결, 유류세 인상 백지화에 이어 최저임금 인상 등의 추가 조치를 발표했지만, 지지율이 21%로 추락했다.

작년 5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후 가장 젊은 지도자로 등장해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마크롱이 1년6개월 만에 왜 이렇게 궁지에 몰리게 됐을까. 경제 활력을 되살리기 위한 친(親)기업·친시장 정책이 “부자에게만 유리하다”는 불만이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민감한 세금 문제를 건드린 게 주된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마크롱이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비용을 마련한다”며 1년 새 23%나 올린 유류세(경유 기준)는 근로자들에게 고통이 큰 조치였다.

마크롱의 권위주의적 스타일도 반감을 샀다. 그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는 경직된 노동법 등 프랑스의 ‘적폐’를 신속하게 걷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불통’ 이미지가 커졌다. 일부 언론과 반대파들은 그의 별명을 ‘주피터’(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를 지칭)로 부르고, 통치 스타일을 나폴레옹의 독재정치를 빗댄 ‘신(新)보나파르트주의’라고 비아냥거린다.

‘노란 조끼’ 시위 여파로 마크롱의 지도력은 큰 상처를 입게 됐다. 낮은 지지율과 개혁 후퇴는 복지정책 남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는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의 유럽연합 개혁에 대한 회의론을 확산시키고 프랑스 지도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프랑스 경제개혁가’, ‘유럽통합 선도자’, 미국 자국우선주의에 맞선 ‘글로벌 거버넌스 주도자’라는 마크롱 이미지가 퇴색할 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크롱의 거품이 마침내 터졌다(The Macron bubble has finally burst)’는 제목의 칼럼을 싣기까지 했다.

FT는 마크롱이 맞닥뜨린 정치적 위기에는 프랑스 특유의 사회문화적 배경도 작용하고 있다고 봤다. “세금은 적게 내되 공공서비스는 더 많이 요구하는 프랑스인들의 모순된 정서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진단이다. “길거리 시위와 폭력으로 정책을 뒤집는 게 다반사인 프랑스 현실이 개혁을 퇴색시켜 모순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통제받지 않는 노조와 일부 시민단체들의 위세(威勢)도 문제로 지적했다. 좌파든 우파든 개혁을 시도하면 마크롱처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개혁을 좌초시키고 있다. “(개혁적 마인드로) 프랑스를 이끄는 것은 점차 불가능한 일이 돼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복지의 ‘단맛’에 길들여진 ‘길거리 민주주의’가 프랑스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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