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현실의 김과장 이대리들도 고참이 됐다. 이제는 대리, 과장 대신 차장이나 부장이란 직급이 더 익숙하다. 본인과 동료들에게 “살아남느라 수고 많았다”는 위로를 건네고 “앞으로 10년 더 고생해보자”고 다짐하는 이들의 지난 10년을 되돌아봤다.‘3차에 양폭’은 이제 전설로김부장, 이차장들에게 지난 10년간 직장 문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물어봤다. 본지가 10년차 이상 직장인 11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7.0%가 ‘회식 강제 참여나 과음 회식이 눈에 띄게 줄거나 없어졌다’고 답했다.“회식 한번 하면 3차는 기본이었는데 이제는 10시를 넘기는 일이 거의 없어요. 회식 횟수도 분기에 한두 번 수준으로 줄어들었고요.” 건설회사에 다니는 김 차장(40)이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바뀐 직장 문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당시만 해도 ‘양폭’(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소폭’(소주+맥주) 이상은 마실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김 차장은 “금융위기 이후 건설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흥청망청 마시는 일이 없어졌다”며 “요새 신입사원 대다수는 양폭 얘기만 들었지 마셔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설문조사 답변 중에는 “저녁 회식보다 점심 회식이 많아졌다” “당일 결정되는 회식이 없어졌다” “개인 사정에 따라 중간에 귀가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는 의견이 많았다.두 번째로 많았던 답변은 ‘야근이 줄고 퇴근 시간이 빨라졌다’(29.4%)였다. 특히 지난 7월 도입된 주 52시간 근로제가 영향을 미쳤다. 제조업체 소속 나 매니저(38)는 “예전에는 일이 없어도 1시간은 예의상 연장근무를 했는데 지금은 오후 6시면 PC가 꺼진다”고 말했다.“임원 말 한마디에 업무 방향 오락가락 여전”10년이 지났지만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 일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답변이 많았다. 응답자의 32.8%가 ‘불합리하고 강압적인 업무지시가 여전하다’는 보기를 골랐다.항공업계에서 일하는 곽 차장은 “아직도 임원의 말 한마디에 업무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했다.‘연차휴가 사용 시 여전히 눈치를 봐야 한다’는 답변도 31.9%로 적지 않게 나왔다. 다만 10년간 바뀐 문화를 묻는 항목에선 23.5%가 ‘연차휴가 사용이 자유로워졌다’고 답해 회사별, 직군별로 상황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답변자의 상당수가 부장, 차장 등 중간 관리자라는 점도 연차를 내기 힘든 이유로 추정된다. 인천의 한 중견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김 부장(42)은 “사원, 대리는 비교적 자유롭게 연차를 쓰지만 부장 이상 관리자급은 연차 사용이 자유롭지 못하다”며 “연차 소진 때문에 휴가를 내고 출근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말했다.80.7% “후배 행동 이해하기 힘들 때 있다”10년이 넘는 직장생활은 신세대가 기성세대로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응답자 가운데 80.7%가 ‘후배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했다.서울의 한 콘텐츠회사에서 일하는 박 차장(39)은 최근 후배와 외근을 나갔다가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오전 11시께 밖에서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이른 점심을 먹고 낮 12시 넘어 회사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후배는 “점심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들어가겠다”며 사무실로 들어가길 거부했다. 박 차장은 “점심시간에 뭘 하든 자기 마음이지만 당시에는 당돌한 말이라고 생각해 화를 내며 사무실로 끌고 들어왔다”고 털어놨다.답변 대부분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사이 어디쯤 걸쳐 있는 후배들의 태도를 지적한 것이었다. “동료나 선후배에 대한 배려 없이 본인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팀워크보다 개인을 우선시할 때” “팀 스케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때”와 같은 불만이 쏟아졌다.그래서일까. ‘상사의 입장이 되니 나도 꼰대 같은 행동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10명 중 7명(73.1%)이 “있다”는 답을 골랐다. 시중은행에서 15년째 일하는 최 차장(43)은 후배의 의견을 무시하는 자신을 보고 스스로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연차가 낮을 때는 선배들이 옛날얘기 하는 걸 싫어했는데 어느새 내가 후배들에게 ‘내가 입행했을 때는 말이야’라고 하고 있더라”며 “후배 의견이 맞을 수도 있는데 ‘네가 뭘 안다고’라고 생각했다가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상당수 응답자가 최 차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옛날에는’ ‘내가 너만 할 때는’ 같은 말을 쓰는 자신을 보면서 ‘꼰대’가 된 것을 느낀다고 했다.이승우/양병훈/하헌형 기자 leeswoo@hankyung.com
10년 전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직장인의 생활은 고달팠고, 앞날은 불안했다. 하소연할 데도 마땅치 않았다. 화요기획 ‘김과장&이대리’의 등장에 직장인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한 이유다. 이들의 성원은 한국경제신문이 10년간 88명의 기자를 동원해 총 999개의 기사(원고지 1만2840장 분량)를 쏟아내도록 한 원동력이 됐다.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을 거치면서 ‘김과장&이대리’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시트콤으로 제작돼 TV 전파를 탔고, 책으로도 출간됐다. 그렇게 ‘김과장&이대리’는 직장인의 애환을 나누는 사랑방이 됐다.시트콤 제작으로 최우수작품상 수상‘김과장&이대리’ 시리즈는 2008년 12월2일 첫선을 보였다. ‘불황기 땐 자격증을 따라’는 제목을 달고서였다. 문헌규 LG화학 차장, 김윤정 국민은행 대리, 김성수 서울세관 심사전문관(당시 직책) 등이 지면을 장식했다. 3명이 보유한 자격증만 25개에 달했다. 바로 전날 한국경제신문이 5대 경제지표를 긴급 점검하겠다고 나섰을 만큼 경제 상황이 나빴던 터라 ‘자격증 부자’ 이야기는 높은 관심을 끌었다.1주일 뒤 ‘윗사람에겐 찍소리도 못하면서 조지기만 하는 상사는 꼴불견’이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김과장&이대리’는 장안의 화제가 됐다. 35세 과장급 직원 4명에게 술자리를 마련해주고 직장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차고 넘칠 정도로 상사 험담이 쏟아졌다. 기사를 읽고 속이 후련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이후로도 직장 안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말실수, 재테크 등을 주제로 한 기사들이 연이어 인기를 끌었다. 매주 화요일은 ‘김과장&이대리’ 보는 맛에 산다는 직장인이 늘어났다. 하루평균 기사 조회 수 100만 건에 달하는 초대형 기획 시리즈의 탄생이었다.‘김과장&이대리’는 승승장구했다. 2010년 9월 공식 홈페이지가 개설됐다. 10월에는 TV 시트콤으로 방송도 탔다. 시트콤 ‘김과장&이대리’는 한국경제TV에서 방영됐고 이후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보유한 28개 채널과 방영 계약을 맺었다. 이듬해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김과장&이대리’를 드라마 부문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신문과 TV를 오간 첫 크로스오버 시트콤이라는 타이틀도 차지했다.“못 해먹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펼쳐든다”2011년에는 ‘김과장&이대리’가 책으로도 출간됐다. 53가지 에피소드를 △직장은 관계다 △삶이다 △능력이다 △정글이다 등 모두 7개 주제로 나눠 구성했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이렇게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그려내주는 책이 있을 줄은 몰랐다(아이디 po**50)’, ‘책 속에 나 같은 사람이 많이 나와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한 번씩 다시 꺼내본다(ne**1)’ 등의 호평이 나왔다.2013년 1월8일자는 특별한 관심을 받았던 지면으로 꼽힌다. 직장 상사들이 신세대 부하 직원의 생활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따져보자는 취지에서 ‘제1회 신세대 이해능력검정시험’이라는 형식으로 25개 문제를 냈다. 직장마다 반타작도 못 한 사례가 속출했다. 난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원색적 비난(부장급 이상)과 이 정도도 모르냐는 한탄(과장급 이하)이 극명하게 갈렸던 시험이었다. 캐러멜마키아토, 그린티프라푸치노, 아포가토, 샤커레토 가운데 커피가 들어가지 않는 음료를 묻는 항목 등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답은 그린티프라푸치노).‘김과장&이대리’는 세월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코너를 지속적으로 투입하며 진화했다. 2015년에는 ‘우리회사 별별스타’를 통해 사내 유명인사를 소개했다. 2016년에는 회사 생활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요즘 직장인은’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직장인의 단골집을 알려주는 고정란도 ‘김과장&이대리’의 한쪽을 차지했다.직원들 인스타 사찰하는 상사들‘김과장&이대리’는 시시각각 생겨나는 직장 내 신조어를 신속하게 전달하고 확산했다. 요즘 흔히 쓰는 ‘젊꼰(젊은 꼰대)’이 대표적. ‘김과장&이대리’가 반년 전에 소개한 내용이다. 자유분방함의 상징이었던 그 옛날 ‘X세대’가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고 주말에는 등산까지 강요하는 ‘꼰대’로 변신했다는 기사(2018년 5월15일자)를 통해서였다. 최근에는 ‘젊꼰’을 ‘꼰망주(꼰대 유망주)’로 부르는 사람도 많다.직장 상사가 직원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내용을 엿보는 ‘페북 사찰’ ‘인스타 사찰’도 ‘김과장&이대리’에 실리며 전국구 유행어의 반열에 올랐다. “이대리, 주말에 그렇게 놀았으면 일해야지?…상사의 ‘인스타그램 사찰’에 계폭(계정 폭파)하고 싶어요ㅠㅠ”(2017년 1월17일자) 기사에는 수천 건의 ‘좋아요’가 달리며 ‘상사 관음증’의 성토장이 됐다.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직장인의 애환을 통해 사회적 트렌드를 읽어내려 했던 노력이 ‘김과장&이대리’를 장수하게 한 원동력”이라며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정책적 대안 제시에도 정성을 기울여준다면 기획의 생명력이 더 길어질 것”이라고 말했다.박종서/박진우/조아란 기자 cosmos@hankyung.com
‘잘나가는 삼성맨, 군대식 문화에 익숙한 현대차맨, 편하게 돈 버는 SK맨….’회사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직장인의 이미지다. 하지만 실상은 외부 인식과 다른 경우가 많다. 한국경제신문은 2016년 8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국내 재계 1~6위(자산 규모 기준) 대기업에 다니는 김과장 이대리의 직장생활을 그룹별로 들여다봤다.첫째 편은 국내 재계 1위 삼성그룹이었다. ‘삼성맨’에 대한 인식은 단연 ‘잘나간다’이다. 하지만 그들은 “회사가 잘나가는 거지, 내가 잘나가는 건 아니다”고 고개를 젓는다. 삼성전자와 그 외 계열사의 격차도 심하다. ‘삼성은 전자와 후자로 나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현대·기아자동차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불굴의 정신’이다. “임자, 해봤어?”라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명언은 현대·기아차의 불도저 같은 도전정신을 대표한다. ‘군대’라는 이미지의 연원이다. 하지만 일사불란한 조직문화 덕분에 세계 자동차업계 5위에 올랐다는 분석이 많다. 다른 기업에 비해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고, 인간적인 문화라는 평가도 나온다.‘SK맨’들은 편하게 돈을 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정유, 이동통신 등 경기를 덜 타면서 꼬박꼬박 현금이 들어오는 사업이 많아서다. 하지만 내부에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SK이노베이션 직원들은 다가오는 전기차 시대를 걱정한다.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졸면 죽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LG그룹 직원들은 ‘2등 이미지’ 때문에 억울해한다. 전자는 삼성에 밀려 2등이지만 업계 1위인 회사도 많다는 얘기다. LG화학, LG디스플레이 등이 대표적이다. LG가 마케팅이 약해서 그렇다는 분석도 있다. 롯데그룹의 김과장 이대리들은 입사 때부터 ‘짠돌이 일본 기업’이라는 편견과 싸워야 한다.“껌 팔아 껌값 수준의 급여를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월급이 짜다’는 인식도 있다. 하지만 직원들이 각 업종 내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다고 롯데그룹은 설명한다.포스코맨들은 “어딜 가나 ‘갑(甲)’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 2013년 한 상무가 비행기에서 “컵라면이 제대로 익지 않았다”며 여승무원을 폭행했을 땐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이 또한 점점 옛말이 되고 있다. 현대제철 등 경쟁사가 많아져서다. 회사도 최대 1000만원의 갑질 신고 포상금을 거는 등 갑질 근절에 앞서고 있다.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