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나 물먹이려고 쓴 거지?”

고백하건대 ‘김과장&이대리’가 생산한 몇몇 밀리언셀러는 자폭이었다. 소재 기근, 사례 기근에 시달릴 때면 곶감 빼먹듯 등잔 밑을 들춰보곤 했다. 언론사가 별건가. 과장 대리 따위의 명칭만 없을 뿐, 서열이 명료한 기업사회라는 건 마찬가지. ‘그냥 기자’들의 자유로운 영혼은 근대 기업의 진화 과정 어딘가에서 우물쭈물하던 조직가치와 자주 충돌했다. 좋은 상사, 나쁜 상사류의 기사가 나올 때면 내부에서 전화가 왔다. “그냥 한번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라고 시작한 모 부장의 추궁은 “야! 밖을 취재해야지, 집안 얘기를 그렇게 노골적으로 쓰면 어떡하냐?”는 힐난으로 이어지곤 했다.

놀라운 건 독자들이었다. 설문조사 대상도 아니고 사례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A기업, B기업 취재원의 메시지가 빗발쳤다. “어이 김 기자, 내 얘기 쓴 거지?” “이 기자님 제가 제보한 거 팀장이 눈치챌까봐 조마조마한데, 그래도 재밌어요!”

반전이었다. 많은 이가 자기 이야기라 믿었다. 안을 때렸는데 밖이 울었다. 공감의 위력에 취한 어느 날 소재 가뭄에 빠진 후배에게 아예 ‘나를 소재로 한번 써보라’며 옆구리를 찔렀다. 서운(?)하게도 차기 아이템이 곧바로 잡혔다. ‘일은 하지 않고 부하들의 아이디어와 성과만 평가하는 리뷰형 상사’였다. 이 아이디어는 좋은 부하와 나쁜 부하, 리더십과 팔로어십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됐다.

반향은 늘 더 큰 반향을 낳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듯 제보가 이어졌다. 사내 성(性)과 정치, 비자금 조성법에서부터 사표의 기술까지….

‘김과장&이대리’는 그렇게 공유됐고 진화했다. 모두가 김과장 이대리였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