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의 지재권 조사 비협조 탓에 高관세 결정
중국 특허 출원 전체의 40%…질적으로는 '글쎄'
중국 유학생은 양국 인력 교류에 오히려 걸림돌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지식재산권 협상은 양국이 피할 수 없는 디지털 인재 전쟁이기도 하다. 90일간의 휴전이 끝나면 과연 누가 웃을지 주목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20일 ‘기술이전, 지식재산권, 혁신 관련 중국의 조치, 정책, 관행에 대한 업데이트’라는 다소 긴 이름의 보고서를 냈다. 지난 3월 발간한 지식재산권 보고서의 연장판인 셈이다. 미·중 협상에 앞서 10일 전 발간한 이 보고서는 첫장부터 중국의 미국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지난 7월 USTR이 중국 상무부에 “지식재산권 침해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하자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조사가 ‘무책임’하며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중국이 오히려 글로벌 무역에서 따돌림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USTR은 이 같은 중국의 비협조적 태도가 중국산 상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고서에 기술하고 있다. 미국이 지식재산권 침해와 관련해 중국을 벼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90일간 휴전 협상 이후 곧바로 지식재산권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식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된다. 30년 전 지재권 협상과 달라
이미 30년간 지속돼온 미·중 지식재산권 협상이다. 중국 당국은 1995년엔 2주 동안 협상 테이블에 앉기를 거부한 적도 있다. 미국은 관세를 무기로 계속 압박했다. 항상 끝장 담판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중국은 각서와 협정을 맺었지만 그 약속은 번번이 휴지 조각으로 변했다.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의 쓰라린 경험이 그의 가슴에 묻어 있다.
지금의 협상 사정은 이전과 많이 다르다. 트럼프 정부만큼 중국에 강한 압박을 펴온 정권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선두주자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3일 발표한 지난해 세계 특허출원 동향을 보면 중국이 138만 건으로 세계 특허출원 건수의 40%를 점하고 있다. 7년 연속 수위다. 중국 정부의 특허 중시 정책이 먹힌 결과다. 특히 미국이 지적하듯 중국이 기술이전을 강요해 특허가 늘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
이제 중국도 다른 나라의 기술을 복제하거나 공격하는 데서 벗어나 자국의 기술을 보호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더구나 중국이 제품을 사고파는 데서 불법 복제를 한다거나 ‘짝퉁’을 대량 판매하는 시절의 지식재산권 이슈가 아니다. 디지털 시대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국가의 명운, 세계 패권의 명운을 가늠하는 협상이다.
중국의 특허는 양에서는 절대적이지만 수준에서는 보잘것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중국의 인공지능(AI)에 사용되는 반도체 대부분은 미국의 퀄컴과 엔비디아가 공급하고 있다. AI 소프트웨어도 미국제 플랫폼과 텐솔프로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 인기 앱(응용프로그램)은 애플과 구글의 OS를 사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본 특허분석회사 페이턴트리절트가 자율주행차 분야의 특허를 분석한 결과 중국 기업은 글로벌 50대 기업에 끼지 못했다. 차량공유 서비스 기업인 디디가 90위, 바이두가 114위에 겨우 올랐다. 게임 운용 툴 등 인터넷 소프트웨어에서 활용되는 건 많이 개발한다.
외국과의 공동 연구에 의한 특허도 많지 않다. 외국의 기술을 획득해 성장하는 단기 추격형 경제에서 경제 선도국으로 빨리 진입하기 위한 마음이 앞선 결과다. 미국 기업에서 벌어지는 지식재산권 탈취가 중국 정부 지도 아래 계획된 것이라는 미국 정부의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디지털 경제에서 지식재산권은 훨씬 탈취하기 쉬운 분야다.
이 같은 지식재산권 분쟁과 맞닿아 있는 것은 결국 인재다. 인재를 얼마만큼 확보하느냐가 국가 간 경쟁의 관건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에 앞서 미국 대학에 입학하는 중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추가로 신원을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중국인 유학생의 통화기록을 점검하고 이들의 중국 및 미국 소셜미디어 개인 계정을 살핀다고 한다. 미국 대학들에 스파이와 사이버 절도 등을 탐지할 수 있는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이라고도 했다. 중국으로선 치명적일 수 있다. 지난 6월 미국은 항공과 로봇공학, 첨단제조 분야를 전공하는 중국인 대학생의 비자 유효기간을 5년에서 1년으로 단축했다. 항공 우주기업의 기술을 빼내려 한 중국인 스파이를 무더기로 기소하기도 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런 유학생들의 스파이 혐의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디지털 인재 확보가 패권의 관건
중국은 30년 전 덩샤오핑 체제에서 미국 유학을 본격화했다. 현재 미국에 유학 중인 대학생은 36만 명이다. 이공계 박사의 10%가 중국인이다. 미국 기업에 근무하는 중국인도 많다. 본국으로 돌아간 유학생은 100만 명을 훨씬 넘는다. 본국 회귀 유학생 중 일부분이 중국에서 미국에 적대적인 행위를 한다는 게 미국 정부의 시각이다. 중국은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유학이 가능한 국가다. 중국 정부의 지시를 받아 기술을 탈취하는 사례도 있다고 미국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중국인의 미국 유학은 중국으로 봐선 두뇌 유출(브레인 드레인)이요, 미국에는 인력 무역의 흑자다. 지금 상황은 다르다. 인력 교류에서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고 미국의 경쟁력을 갉아 먹는다고 미국 정부는 생각하고 있다. 미국인들도 그런 분위기에 공감하는 형국이다.
중국 돌아간 유학생, 미국에 적대
인도나 한국 유학생도 물론 고국으로 돌아가지만 지식재산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인도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기업들을 키운다. 최근 시가총액에서 애플을 이겨 화제가 됐던 사티아 나델라 MS CEO도 유학생 출신이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대표도 인도 유학생이었다.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경제 체제 간의 충돌이다. 정작 시 주석이 중국을 더 강한 사회주의 체제로 이끌면서 미·중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미국이 30년 전의 노장 라이트하이저를 협상대표로 한 것은 중국과의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미·중 협상에 대한 섣부른 낙관론을 예상하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하지만 중국이 글로벌 체제에 편입되지 못하는 독자 경제를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쟁은 시작됐다. 결코 이 상황을 단순하게 읽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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