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세계 경제에 뒤진 한국…성장동력 부재·격차불만이 문제
한국 경제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지난 20여 년간 심화돼온 저성장세를 역전시켜 향후 10여 년 내에 ‘선진국권’으로 진입할 것인가, 아니면 작금의 저성장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지속함으로써 ‘중진국 함정’에 매몰되고 말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필자는 평소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삶이 보장되고 누구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다 풍요롭고 쾌적한 삶을 향유할 수 있는 국가’를 선진국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정의에 따라 오늘날 선진국이라고 볼 수 있는 20개국은 2013~2017년 평균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8139달러(일본)~10만9241달러(룩셈부르크)에 이르고 있다. 한국 2만7671달러의 1.4~3.9배 수준이다.

선진국 도약이냐, 중진국 함정이냐

중진국 함정이라 함은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발전한 한 국가가 크게 개선된 중진국 상태에 만족해 더 이상 발전의 노력을 계속하지 않음으로써 중진국 상태에 영원히 머물러 있거나 후진국 상태로 추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1960년대 초 중진국권에 있던 26개국 중 일본과 아일랜드가 이전의 선진국권으로 복귀하고, 싱가포르가 유일하게 중진국권에서 선진국권으로 도약했다. 이들 국가를 제외하면, 나머지 23개국 중 이스라엘 이탈리아 스페인 등 20개국이 오늘날까지 50년 이상 중진국권에 머물러 있고, 불가리아 콜롬비아 페루 등 3개국은 후진국권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뉴스의 맥] 세계 경제에 뒤진 한국…성장동력 부재·격차불만이 문제
최근의 한국 경제 추이를 보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머지않은 장래에 선진국권으로 진입할 것이라고 전망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83~1987년 평균 11.0%(전년 동기 대비)에서 2013~2017년 평균 3.0%로 지난 30년간 한 번도 반등하지 못하고 5년마다 평균 1.1%포인트씩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2018~2023년에는 평균 2.7%로 더욱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경제성장률과 비교하면 한국 경제 하락 추세는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1983~1987년에는 세계 경제 평균 성장률이 3.7%로 한국이 3배 정도 앞섰다. 그러다 2003년부터 세계 경제성장률을 밑돌기 시작해 2013~2017년에는 세계 경제 평균 성장률 3.5%의 0.9배에 그쳤다. 2018~2023년 평균으로는 세계 경제성장률 3.6%의 0.8배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이상 작동안하는 과거 성장동력

1970년대 후반에 중진국권으로 진입한 한국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 매몰되지 않고 2020년대 후반에 선진국권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018년 2.7%(예상)에서 2019년 2.9%, 2020년 3.1%, 2021년 3.3%로 높아지고, 이후 3.3% 성장률을 2030년까지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2026~2030년 평균 1인당 국민소득이 2013~2017년 불변가격으로 4만1229달러에 이르러 선진국 최저 수준을 넘어선다.

한국 경제의 성장세가 쇠퇴하고 있는 것은 크게 봐서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그동안 한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가능하게 한 기존 성장동력이 새로운 시대적 여건에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성장 과정에서 생겨난 격차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세계 성장률을 웃돌기 시작한 1960년대 초반부터 경제주체들의 강력한 ‘습득력’을 성장동력으로 성장해왔다.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해외 자본을 유치하고 선진 외국 기술을 도입해 고품질 상품과 서비스를 저가격에 생산, 수출할 수 있었던 것도 습득력에 기인했다. 습득력은 기억력과 근면성을 합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40여 년간의 경제성장 결과 국민소득 수준, 즉 임금 수준이 크게 올라 고품질의 상품 및 서비스를 저가격으로 수출할 수 없게 되자 한국 경제의 습득력을 기초로 한 성장동력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게 됐다.

새 성장동력으로 요구되는 '지식력'

필자는 오늘날의 ‘지식사회’에서는 ‘지식력’이 고품질고가격 상품과 서비스 수출을 가능하게 하는 성장동력이라고 본다. 여기서 지식력이라 함은 ‘정보를 이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말하고, 그것은 정보력과 창의력, 협력력이 합쳐져야 가능해진다.

협력력이 여기에 첨가되는 것은 오늘날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개인의 정보력과 창의력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가 없고 상하급자, 동급자 그리고 심지어는 경쟁자와도 협력해 개인의 정보력과 창의력을 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보력과 창의력, 협력력이 합쳐진 지식력이야말로 고가격고품질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해야 하는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지식력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요구된다고 해서 종래의 습득력이 결코 불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대체공휴일까지 도입돼 2018년의 경우 공휴일이 연간 16일(토일요일 포함 119일)에 달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공휴일이 많은 국가가 됐다.

습득력의 두 가지 요소의 하나인 근면성 감퇴를 시사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에 심각한 문제를 던지고 있다. 지식력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은 습득력이라는 종래의 성장동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보완관계에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격차불만이 성장세 추락 가속화

한국 경제 성장세 추락의 다른 원인 하나는 그동안의 경제성장이 낳은 사회적 격차에 대한 불만이 만연하다는 사실에 있다.

2013~2016년 평균으로 최상위 20% 평균소득에 대한 최하위 20% 평균소득의 비율은 한국(평균 1인당 소득 2만7671달러)이 17.9%로, 스웨덴(5만4747달러)의 36.7%, 일본(3만8139달러)의 18.6%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소득계층 간 격차가 그만큼 큰 것이 사회적 불만의 기본요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소득격차는 교육 기회 격차로 이어짐으로써 사회적 불만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2003년 최하위 20% 소득계층의 교육비 지출 금액은 최상위 20% 소득계층 교육비 지출액의 20.4%였지만, 2016년에는 14.1%로 더 낮아졌다.

주택보급률이 102.6%(2016년 기준)에 달하지만 주택보유율은 55.5%에 불과한 것도 사회적 불만을 키우는 요인이다. 2003년 주택보급률(102.3%)과 주택보유율(56.

0%)보다 더 악화된 것으로, 그만큼 다주택 보유자가 늘면서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성장동력 교체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도성장 과정에서 초래된 사회적 격차에 대한 불만이 쌓인 것이 오늘날 한국 경제 성장세를 추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박재윤 前 장관이 본 '소득주도성장'

정부 개입이 생산과 분배 왜곡…기업 경영전략·노사협상에 맡겨야

혁신성장 위해선 규제완화 시급…투자촉진 통한 일자리 창출을


현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경제정책으로는 한국 경제의 성장률 추락세를 중지시키거나 반전시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소득주도성장론’은 한계소비성향이 고소득층보다 더 높은 저소득층(무소득층 포함)의 소득을 증대해 총수요를 늘림으로써 경제성장을 유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금까지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일자리 창출 등의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뉴스의 맥] 세계 경제에 뒤진 한국…성장동력 부재·격차불만이 문제
최저임금제는 모든 근로자에게 최저 수준의 임금을 보장해주기 위한 제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할 수 없는 사업은 국민경제의 효율성을 위해 폐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정부의 최저임금 수준이 후자의 관점도 고려해 책정됐다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지원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기본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 주 52시간 이상 근로는 허용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결정된 것이지만 기본 인권의 관점에서 허용하는 최대 근무시간을 충분히 여유 있게 설정하고, 실제 근무시간은 기업의 노사협상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역시 고용의 기본적인 안정성을 보장하되 경영상 필요에 따라 기업이 자유롭게 고용에 관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일자리정책도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대략 세 가지 방안으로 추진해야 한다. 첫째, 구직자와 구인자의 필요를 매칭해주고, 둘째, 구직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며, 셋째,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매칭과 교육훈련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그 효과가 제한적이고 장기간이 걸리므로, 정부는 이들 방안과 더불어 투자 촉진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기업의 생산과 분배 과정에 정부가 개입해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기업의 생산 및 분배 과정에 직접 개입하면 기업 내부에서의 생산과 분배를 왜곡시켜 기업과 경제 성장을 위축시키게 된다. 기업 내부에서의 생산과 분배는 자율적인 경영전략과 노사협상에 맡기고,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는 기업 차원의 생산과 분배가 이뤄진 후에 개인의 소득과 재산에 대한 조세와 소득보조금, 그리고 각종 복지제도 등으로 소득을 재분배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공정경제를 위한 현 정부의 노력은 비교적 착실히 진행돼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정경제를 내세움으로써 공정거래 정책이 경제 전반의 공정성, 즉 분배의 공정성까지 모두 다루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공정거래 정책의 효과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규제개혁 관련 법안들이 하루속히 국회를 통과해 시행돼야 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시행령, 행정, 관행 등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여러 규제를 각 부처가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폐지·완화해야 한다. 규제 방식도 직접규제에서 간접규제로 전환해야 한다.

■박재윤 前 장관 약력

△1941년 부산 출생
△부산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인디애나대 경제학 석·박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영삼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
△통상산업부 장관
△부산대·아주대 총장
△(현)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지식사회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