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에선 승자가 있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이 상대국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무역전쟁을 시작한 이후 많은 전문가가 하고 있는 얘기다. 미국이 중국 상품에 관세를 매기면 중국산 원자재, 부품, 소비재 가격이 올라 이를 수입해 사용하는 미국 기업과 소비자도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푸잉(傅瑩) 중국 사회과학원 국제전략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지난달 블룸버그통신 기고에서 “미국과 중국 경제는 너무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떼어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양국 경제가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무역전쟁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런 전망은 국제정치학 이론 중 맨체스터학파의 ‘무역을 통한 평화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영국 산업혁명 중심지였던 맨체스터의 자유무역주의자들은 전쟁은 상업적 이익을 해친다며 무역을 매개로 한 경제적 상호 의존이 국가 간 갈등을 줄이고 평화를 촉진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경제적 상호 의존은 국가 간 충돌을 막는 안전장치가 되지는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 각국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상호 의존도가 높았다.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품 수출 규모는 1870년 12%에서 1913년 18%로 늘었다. 독일도 같은 기간 GDP 대비 상품 수출이 10%에서 16%로 증가했다.

더 이상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득세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총장이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1910년 한 논문에서 “전쟁은 생산, 유통, 소비의 전 세계적인 공급망을 무너뜨릴 것”이라며 “유럽은 결코 큰 전쟁을 치르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예상은 불과 4년 뒤 끔찍하게 빗나갔다.

필리프 마르탱 프랑스 파리정치대 경제학과 교수 연구팀은 2007년 ‘전쟁 말고 무역?’이라는 논문에서 “무역이 평화를 촉진한다는 전통적인 관념은 무역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고 군사적 충돌이 무역을 줄이며 국가 지도자들이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1870년부터 2001년까지 국제관계를 연구한 결과 무역 개방도와 군사적 충돌의 상관관계는 분명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전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정치학자들은 각국이 국제관계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경제적 상호 의존은 오히려 갈등의 소지를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로베르토 본파티 영국 노팅엄대 경제학과 교수 연구팀은 2014년 ‘성장, 수입 의존도와 전쟁’이라는 논문에서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외국의 봉쇄정책에 취약해진다”며 “이를 인식한 나라가 선제공격에 나서면서 전쟁이 일어난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1900년대 초 영국과 독일의 관계, 나치 독일의 1941년 소련 침공, 미국을 상대로 한 일본의 태평양전쟁 등을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의 취약성이 전쟁으로 이어진 사례로 꼽았다.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 역시 “국가는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상호 의존이 만들어낸 취약성에서 벗어나 자원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려 한다”며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또 무역이 국내 산업 간, 계층 간 불평등을 키워 국가 간 갈등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도이치자산운용은 “무역으로 어떤 사람은 부유해졌지만 어떤 사람은 뒤처졌다”며 “사회 불안과 정치적 반발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극적인 역사가 반드시 똑같이 반복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경제적 상호 의존이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깊이 새겨야 할 역사의 교훈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든 군사적인 면에서든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은 더욱 그렇다. 제임스 홈스 미국 해군대 교수는 지난 9일 미국 외교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국가는 권력, 이익, 국제적 지위를 얻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고 전쟁을 치른다”며 “제1차 세계대전은 무역이 평화의 보증서가 아니라는 암울한 교훈을 아시아 국가들에 던져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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