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엄마 현실 육아] (37) 나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다
결혼 전의 나는 간단한 라면이나 볶음밥 정도 외에는 요리를 딱히 해 본 적이 없었다.

매 끼니마다 집 밥을 먹어야 한다 주의도 아니고, 요리에 재미를 느끼는 편도 아니어서 배달음식을 먹든 외식을 하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즐거운 식사를 하면 그뿐이었다.

그냥 내 몸 하나 건사하고 회사 다니는 것만도 얼마나 피곤했던지 퇴근해서 집에 가면 드러누워 꼼짝도 하기 싫었고 엄마가 준비해주는 식사도 몇 번이나 다그쳐야 마지못해 식탁에 앉았다. 게다가 그때 나는 복에 겨워 반찬투정까지 하지 않았던가. (엄마 죄송해요)

아이 둘을 낳은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야말로 내 인생 최고로 호사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엄마 코트 세탁소 맡겨줘", "오늘 저녁엔 갈비찜 해놔", "이거 말고 다른 과일 없어?"

이렇게 엄마를 시녀 부리듯 시켜 먹었고 그게 당연한 것인줄 알았다.

얼마 전 아침 딸이 내게 대갚음해줬다.

"엄마, 내가 제일 좋아하는 토끼 티셔츠 못 봤어?"

"앗 아직 세탁기에 있는데."

"(세상 진지하게) 엄마, 그동안 세탁기도 안 돌리고 뭐 했어? 나 오늘 그 옷 입으려고 했단 말이야."

"바빠서 못했지. 오늘은 다른 거 입자, 응?"

"싫어. 그거 입을 거야!"

"...끙"

결혼 전 내가 저지른 과업을 이렇게 되돌려 받으며 빚 갚는 게 인생이구나.

나 혼자 밥 먹는 것 같으면 대충대충 먹겠는데 어쩐지 아이들과는 한 끼 햄버거를 먹는 것도, 식탁에 영양가 있는 반찬이 한두 개 올라있지 않은 것도 죄짓는 기분. 이게 나조차도 생소한 내 모성애의 실체인가.

아이들 이유식 먹일 때 하루 종일 뭔가를 다져대고 끓이고 젓느라 분주한 부엌데기를 경험했다.

소고기 다지고 닭고기 다지고 당근, 버섯 등 갖은 재료를 넣어 끝도 없이 다지고 그렇게 정성껏 만들어 힘겹게 먹였는데 여행 가느라 시판되는 배달 이유식 사먹여 봤더니 평소와 다르게 너무 잘 받아먹을 때 그 오묘한 기분이란.

까탈스러운 아이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식성 좋은 아이였구나. 내가 그동안 얘를 데리고 뭘 한건가 싶었다.

반찬을 만들 때도 엄마 아빠용은 간하고 아이 용은 소금 간장 덜 넣고 따로 만들려니 손도 두 배로 들고 요리를 하는 시간이 버겁기만 했다. 아이는 책 읽어달라고 또는 놀아달라고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고 있는데 '엄마표 음식'을 해먹인다고 이러는 게 맞는 건지 회의도 밀려왔다.
핫도그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요?
핫도그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요?
아이는 점점 자라 어린이집 단체생활에 익숙해졌다. 주위 엄마들 보면 '어린이집에서 아이에게 인스턴트를 먹였네',' 간식으로 어떻게 이걸 줬냐' 걱정들 많이 했지만 난 하루에 한 끼 점심에라도 영양균형 잘 맞춘 식사를 먹일 수 있다는 게 오히려 감사했다.

조리사가 5대 영양 고려해서 밥, 국, 김치, 반찬, 간식까지 골고루 먹이고 양치까지 시켜주는 데 도대체 뭘 더 바란단 말인가.

원래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나마 완벽해지려 애쓰지도 않으면서 난 점점 허술한 엄마가 됐다.

단 한 끼라도 그냥 가족끼리 웃으며 먹으면 그만이다 생각한다. 아이들도 어른처럼 그날 그날 먹고 싶은 것도 다르고 컨디션도 다를 텐데 늘 틀에 박힌 집 밥만 먹으면 질릴 거라, 그렇게 위안삼는다.

아이 식탁을 빈틈없이 채우려 하기보다는 어제는 고기로 단백질 섭취했으면 오늘은 잔치국수 먹고 말자 하든가, 2주에 한 번 정도는 맥모닝 배달음식으로 아침을 대체한다. 라면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어떠랴 싶어 걱정을 내려놓았다.

하루에 몇 번, 반드시 몇 시에 식사! 이런 규칙보다는 일주일을 기준으로 아이가 골고루 먹고 적당히 운동하면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한 후 먹거리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대신 아이와 눈 맞추고 웃기, 사랑한다고 안아주기, 잘한 일이 있을때는 엉덩이 토닥이고 듬뿍 칭찬을 해주며 "오늘 너도 나도 참 잘했어요" 마음 속에 도장을 꾹꾹 찍어나간다.
[못된 엄마 현실 육아] (37) 나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다
워킹맘의 육아에세이 [못된 엄마 현실 육아]는 격주로 네이버 부모i에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