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엄마 현실 육아] (36) 아이들은 왜 슬라임을 끝없이 사고 싶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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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 작아졌지만 버리기엔 아까운 옷 등 아이가 커가면서 필요 없는 육아용품이 집안에 넘쳐난다.
아이가 어릴 땐 중고물품 구경하는 재미에 인터넷 카페를 통한 '드림'이나 '판매'도 해봤지만 이것도 여간 손발이 부지런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제품 준비해서 상세 이미지 찍어 올려야지, 어느 부위에 사용감이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야지, 택배 부쳐야지, 가격 흥정이라도 들어오는 날이면 신경전도 장난 아니다. 사용하면서 구매 당시 박스가 없다 보니 부피가 큰 물품은 직거래 해야 해서 그 또한 번잡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방인 성북동 일대에서 '어린이 장터'가 열린다는 플래카드를 발견했다.
문의해보니 아이들이 직접 안 쓰는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라 한다.
'이거구나' 싶어서 신청한 뒤 아이들과 중고장터에 내다 팔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 손도 안 댄 인형인 거 같아서 '내놓자' 했더니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기가 가장 아끼는 인형이란다. 아니 도대체 언제부터?
바비인형에 빠진 아이들이 이제는 공룡을 쳐다보기도 않길래 '내놓자' 했더니 그 애는 자기가 이름을 지어준 아이라서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이런 식의 반나절 실랑이와 설득 끝에 한 박스 물건을 추려내는데 성공했다.
"이거 내다 팔까", "저거 내놓자"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본 것부터 실수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어차피 없어져도 모를만한 물건들인데 알아서 담았으면 됐을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팔 물건을 스스로 찾아보라고. 자기가 판 물건의 금액은 다 주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고심 끝에 팔기로 마음 굳게 먹고 가져온 물건은 내가 볼 땐 쓰레기와 다름없었다.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 반짝이가 지저분하게 들어간 슬라임(끈적이는 아이들 완구), 갖가지 모양의 스티커,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메모꽂이….
나 같으면 그냥 가지라고 해도 사양할 것들 뿐이었다.
대망의 어린이 장터가 열리는 날, 적당히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이미 여러 팀의 아이들이 돗자리에 팔 물건을 배치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근방에 자리를 잡고 팔려고 가져온 물건들을 정리했다. 성북동 거리가 요즘 핫하다 보니 나들이 나온 젊은 연인들은 물론 아이와 산책 나온 가족들도 많았다.
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한 번도 들지 않은 고가의 브랜드 유아가방, 두어 번 신은 브랜드 샌들, 선물 받아 아끼다 이제는 작아진 명품 원피스 등은 조개껍데기와 슬라임에 밀려 찬밥이었다.
예상치도 못했던 상황이다. 꼬마 손님들은 우리 집 꼬마들이 내놓은 스티커와 소라껍데기를 보고 앞다투어 만지작 거린다. 문제는 가격 책정에 대해 미리 협의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거 얼마에요?"하는 꼬마 손님들의 질문에 경제관념이 아직 없는 아이들은 무조건 "100원이에요"를 외쳐댔다.
탱탱볼을 하나 산 손님이 천 원을 내밀면 900원을 거슬러줘야 했다.
나중엔 아이들에게 "잔돈이 없으니 제발 무턱대고 100원이라고 하지 말고 최소한 500원이라고 하라"고 사정을 했다. 자신이 상점 주인이 된 사실에 기쁜 아이들은 2천 원을 벌자마자 "우리도 장터 구경 좀 하고 올테니 엄마가 여기 지켜주세요"라는 말을 던지고 사라져서는 지긋지긋한 슬라임과 스티커들을 또 사들고 신나게 돌아왔다.
집에 있는 슬라임을 100원에 팔고 장터에서 또다시 1000원 주고 슬라임을 사들이는 너희들이야 말로 창조경제의 선봉자 들이다.
딱지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팔아놓고는 왜 또 비슷한 모양의 딱지를 사온건지, 반짝이 슬라임을 팔고 진주 슬라임을 왜 또 사온건지 난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신나는 어린이 장터를 경험했다. 안 쓰는 용품을 팔아 무려 2만 9000원의 수입을 얻었지만 파스타를 먹고 싶다는 아이들과 점심을 사 먹고 심심하다는 아이들 과자에 아이스크림을 사주느라 4만 5000원을 썼다.
하지만 직접 사장님이 돼 중고 물건을 팔아보고 "엄마 나 장사 잘하지"하며 마냥 기뻐하는 아이들이 이날 누린 건 돈으로 환산하지 못할 경험이었다. 워킹맘의 육아 에세이 '못된 엄마 현실 육아' 네이버 포스트를 통해 격주로 연재되고 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땐 중고물품 구경하는 재미에 인터넷 카페를 통한 '드림'이나 '판매'도 해봤지만 이것도 여간 손발이 부지런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제품 준비해서 상세 이미지 찍어 올려야지, 어느 부위에 사용감이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야지, 택배 부쳐야지, 가격 흥정이라도 들어오는 날이면 신경전도 장난 아니다. 사용하면서 구매 당시 박스가 없다 보니 부피가 큰 물품은 직거래 해야 해서 그 또한 번잡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방인 성북동 일대에서 '어린이 장터'가 열린다는 플래카드를 발견했다.
문의해보니 아이들이 직접 안 쓰는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라 한다.
'이거구나' 싶어서 신청한 뒤 아이들과 중고장터에 내다 팔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 손도 안 댄 인형인 거 같아서 '내놓자' 했더니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기가 가장 아끼는 인형이란다. 아니 도대체 언제부터?
바비인형에 빠진 아이들이 이제는 공룡을 쳐다보기도 않길래 '내놓자' 했더니 그 애는 자기가 이름을 지어준 아이라서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이런 식의 반나절 실랑이와 설득 끝에 한 박스 물건을 추려내는데 성공했다.
"이거 내다 팔까", "저거 내놓자"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본 것부터 실수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어차피 없어져도 모를만한 물건들인데 알아서 담았으면 됐을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팔 물건을 스스로 찾아보라고. 자기가 판 물건의 금액은 다 주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고심 끝에 팔기로 마음 굳게 먹고 가져온 물건은 내가 볼 땐 쓰레기와 다름없었다.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 반짝이가 지저분하게 들어간 슬라임(끈적이는 아이들 완구), 갖가지 모양의 스티커,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메모꽂이….
나 같으면 그냥 가지라고 해도 사양할 것들 뿐이었다.
대망의 어린이 장터가 열리는 날, 적당히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이미 여러 팀의 아이들이 돗자리에 팔 물건을 배치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근방에 자리를 잡고 팔려고 가져온 물건들을 정리했다. 성북동 거리가 요즘 핫하다 보니 나들이 나온 젊은 연인들은 물론 아이와 산책 나온 가족들도 많았다.
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한 번도 들지 않은 고가의 브랜드 유아가방, 두어 번 신은 브랜드 샌들, 선물 받아 아끼다 이제는 작아진 명품 원피스 등은 조개껍데기와 슬라임에 밀려 찬밥이었다.
예상치도 못했던 상황이다. 꼬마 손님들은 우리 집 꼬마들이 내놓은 스티커와 소라껍데기를 보고 앞다투어 만지작 거린다. 문제는 가격 책정에 대해 미리 협의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거 얼마에요?"하는 꼬마 손님들의 질문에 경제관념이 아직 없는 아이들은 무조건 "100원이에요"를 외쳐댔다.
탱탱볼을 하나 산 손님이 천 원을 내밀면 900원을 거슬러줘야 했다.
나중엔 아이들에게 "잔돈이 없으니 제발 무턱대고 100원이라고 하지 말고 최소한 500원이라고 하라"고 사정을 했다. 자신이 상점 주인이 된 사실에 기쁜 아이들은 2천 원을 벌자마자 "우리도 장터 구경 좀 하고 올테니 엄마가 여기 지켜주세요"라는 말을 던지고 사라져서는 지긋지긋한 슬라임과 스티커들을 또 사들고 신나게 돌아왔다.
집에 있는 슬라임을 100원에 팔고 장터에서 또다시 1000원 주고 슬라임을 사들이는 너희들이야 말로 창조경제의 선봉자 들이다.
딱지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팔아놓고는 왜 또 비슷한 모양의 딱지를 사온건지, 반짝이 슬라임을 팔고 진주 슬라임을 왜 또 사온건지 난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신나는 어린이 장터를 경험했다. 안 쓰는 용품을 팔아 무려 2만 9000원의 수입을 얻었지만 파스타를 먹고 싶다는 아이들과 점심을 사 먹고 심심하다는 아이들 과자에 아이스크림을 사주느라 4만 5000원을 썼다.
하지만 직접 사장님이 돼 중고 물건을 팔아보고 "엄마 나 장사 잘하지"하며 마냥 기뻐하는 아이들이 이날 누린 건 돈으로 환산하지 못할 경험이었다. 워킹맘의 육아 에세이 '못된 엄마 현실 육아' 네이버 포스트를 통해 격주로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