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도 국내총생산(GDP)을 비롯한 각종 국가 통계의 신뢰도에 대한 의문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습니다. 주요 경제관련 기관들이 국가 통계에 대해 이견을 드러내면서 정부 통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실하게 진행돼 왔던 국가통계 작성 작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GDP 통계를 작성하는 내각부와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가 국가 기간통계의 신뢰성을 두고 이견을 드러냈습니다. 지난달 정부 통계 개선책 등을 논의하는 통계위원회의 한 회의에서 일본은행 통계국장이 내각부 통계 담당자에게 GDP의 기초 데이터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후문입니다.

GDP는 여러 가지 통계를 합성해 만드는 ‘2차 통계’입니다. 원본 데이터를 합성하는 방법은 매우 복잡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각부의 공식 GDP 발표를 미더워하지 못하는 일본은행이 원데이터를 확보해 스스로 GDP통계를 내보고 싶다고 나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내각부는 일본은행 요청에 따라 일부 원본 데이터는 제공했지만 전체 데이터를 넘기는 것은 “업무 부담이 크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합니다.

일본은행이 내각부 공식발표를 못 믿는 것은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후생노동성이 매달 발표하는 임금통계는 올 1월에 통계기준을 바꿨더니 전년 동월대비 증가율이 껑충 뛰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 임금데이터에 기반을 두어 정리되는 내각부 임금통계도 잇달아 수정이 가해졌습니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이 같은 임금증가율이 너무 높다고 보고 올 7월 경제·물가 전망 리포트에서 통계산출 방식 변경의 영향을 제외한 수치를 사용했습니다. 일본은행은 정확한 경제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선 GDP통계 합성비율도 명확하게 재검증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자연스럽게 일본의 허술한 통계작성 실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통계 관련 직원 수는 올 4월 현재 1940명입니다. 전년 대비 2%가량 늘어난 수치지만 2009년 대비로는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미국의 1만4000명에는 비할 바가 아닙니다. 인구가 일본의 절반 수준인 프랑스도 2500여명의 통계 관련 직원을 두고 있고, 캐나다도 5000여명의 인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일부 통계를 민간에 위탁해 작성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일본 정부 부처별로 인원 부족이 심한 곳도 적지 않습니다. 부처별로는 담당 인원이 10%넘게 줄어든 곳도 있습니다. 각 부처에서 부적절한 데이터 작성이 드러났지만 “통계를 잘 아는 인원이 부족하다”는 점이 변명으로 나왔을 정도입니다. 예산도 늘지 않고, 통계 관련 예산은 후순위로 밀리기 쉽다고 합니다.

일본에선 1947년에 통계법이 마련된 이후 정식 생산된 각종 통계가 국가와 지자체 정책 판단의 근거가 돼왔습니다. 최근 들어선 저출산·고령화로 사회구조가 크게 변화하는 만큼, 사회의 진짜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선 정확한 통계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지적입니다.

통계의 정확도가 의심을 받게 되면 모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게 됩니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 갑작스런 통계청장 교체에 즈음해 통계 신뢰도를 둘러싼 논란이 빚어졌던 경험이 있는 만큼, 통계를 둘러싼 일본은행과 내각부간 다툼이 남의일로만은 보이지 않는 느낌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