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삶, 그 멋짐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긴 시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름답게 낭송하는 여인을 봤다.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성산포’였다. 또 다른 모임에선 한 노신사가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과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를 멋지게 낭송했다. 그때마다 든 생각은 ‘참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이구나!’였다.

아내가 어느 가을 아침 조용히 오류 선생의 ‘채국동리하(采菊東籬下)’를 읊조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참 괜찮은 여성과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40년을 같이 산 아내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는다는 게 놀라운 일 아니겠는가?

이런 멋짐을 나도 좀 가져보려고 좋아하는 문장 몇 개를 외워 보기로 했다. “‘네가 곧 죽는다’는 걸 기억하는 건 내 인생의 큰 결정을 내릴 때마다 가장 중요한 도구다”로 시작되는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 연설문 중 마지막 부분이 그중 하나다. 칸트의 묘비에 나오는 ‘두 가지가 마음을 가득 채운다네/ 항상 새로이 더해지는 놀라움과 경외로/ 더 자주 생각하면 할수록 더 오래 생각하면 할수록/ 내 위 별로 뒤덮인 하늘과/ 내 안 도덕률이라네’ 역시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다.

인생을 멋지게 사는 방법 아니면 최소한 그렇게 보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노래를 부를 수도, 악기를 연주할 수도, 그림을 그리고 멋진 묘기를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이런 것 없이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멋진 시나 멋진 문장을 원래의 언어 그대로 외우고 읊는 일이다. 이렇게 쉬운 것 같은 방법에도 중요한 원칙이 있긴 하다. 스스로 먼저 깊이 감동해야 한다. 감동이 깊으면 저절로 외워진다. 감동이 본(本)이요 시(始)요 선(先)이고, 외움이 말(末)이고 종(終)이요 후(後)라는 말이다.

준비할 것은 감동할 준비, 마음의 준비뿐이다. 이제 감동할 준비가 됐는가? 그렇다면 복잡한 마음을 내리고 그 빈 마음에 감동을 새기고 구절 하나하나를 온전한 나의 것으로 만들어 읽고 또 읽어 보자. ‘용력지구(用力之久).’ 힘씀이 오래면 반드시 이룰 것이다. 시를 읊는 것은 감동에 더해 멋짐을 보탠다. 멋진 시를, 멋진 경구를 나의 것으로 만들어 읊어 보자. 사람이 달라 보일 것이다. 글 읽는 소리가 가가호호 방방곡곡 울려 퍼지는 나라를 꿈꾼다.

잡스의 연설문은 거의 다 외웠고, 칸트의 묘비명은 이제 시작이다. 《대학(大學)》이 말하는 리더의 20가지 덕목도 거의 완성 단계다. 읽고, 또 읽고, 느끼고, 또 느끼고…. 그러면 자연히 익혀지고 외워지는 것이니 인생 멋지게 살기 참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