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비정규직 조리원 "나아진 건 '정규직' 간판뿐…수당도 없어져"
구의역 희생 김군 동료 "김군 이용해 '채용잔치' 파렴치한 몰릴 줄이야"
교통공사 정규직 전환자들 "도둑 낙인 억울…연봉 2배로 둔갑"
"비정규직으로 21년을 일하다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고 해서 그 말을 믿고 따랐을 뿐인데 사회적 지탄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정규직이 되고 나아진 건 '정규직'이라는 간판밖에 없는데도요.

"
1997년부터 서울교통공사 구내식당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최모(55) 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는 "정규직 전환 이후 연봉은 3천200만원 남짓인데, 언론에선 7천만원 넘는 고액 연봉자로 둔갑했다"며 "7천만원을 받아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과 정규직 전환 직원들이 8일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정규직 전환자에 대한 매도와 비난, 공격을 중단해달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교통공사는 올해 3월 상대적으로 채용 절차가 간단한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1천285명 중 자녀·배우자 등 기존 직원의 친인척이 최소 111명(8.6%)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채용 특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서울시는 채용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는지 밝혀달라며 감사원 감사를 청구한 상태다.

조리원 최씨는 "무기계약직으로 일할 때 일은 고됐지만 그래도 초과 근무 수당이나 휴일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며 "정규직이 되고서 주당 근무시간을 52시간에 맞추다 보니 수당을 받지 못한다.

해야 할 일은 예전과 다름없는데 조별 근무 인원을 대폭 줄여 정시 퇴근은 꿈도 못 꾼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구의역 사고로 사망한 김군과 같은 회사인 은성PSD에서 일했으며 사고 전날까지 김군과 같이 있었던 스크린도어 정비원 박모 씨도 목소리를 냈다.

박 씨는 "올해 초 정규직으로 전환되며 김군과 못다 한 약속을 지켰다고 기뻐했었다"며 "그런데 저희가 김군을 이용해 '채용 잔치'를 벌인 파렴치한, 일자리 도둑으로 내몰릴 줄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 역시 채용 과정의 비리가 있었는지 명백히 밝히고, 만약 드러나는 비리가 있다면 그에 맞는 조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하청업체 직원들이 정규직 전환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채용비리 당사자로 낙인찍는 것은 김군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밝혔다.

지하철 7호선에서 전동차를 12년째 정비한 한모 씨는 5촌 친척이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정규직 전환 직원이다.

그는 "제가 처음 일하게 된 곳은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인데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와 합쳐 서울교통공사가 됐다"며 "이번 일(채용 특혜 의혹)이 터지고 나서야 평소 왕래가 없었던 5촌 친척이 지하철 기술 분야에 근무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부당하게 입사하지 않았는데 친척이 재직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매도당하는 것 같아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공동개최한 정의당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무책임한 공격으로 상처받은 당사자를 위로하고,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서울시 행정사무 감사에서 대책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