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 수장들 앞에서 미·중 통상전쟁 격화로 중국 경제가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최고 지도부가 공개 석상에서 경기 둔화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어서 주목된다. 앞서 지난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주재로 열린 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 중국 최고 지도부는 공개적으로 경기 둔화를 인정했다.

7일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리 총리는 전날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台) 국빈관에서 열린 ‘1+6’ 원탁회의에서 “중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여건)은 변하지 않았지만 대내외 요인으로 일정한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리커창 "中 경제, 하방 압력"…국제기구 수장들에 실토
2016년 시작해 올해 세 번째 열린 이 회의에는 리 총리를 비롯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김용 세계은행 총재,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호베르투 아제베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마크 카니 금융안정위원회(FSB) 의장, 데보라 그린필드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차장 등 6개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했다.

리 총리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향후 추가 감세 등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 것”이라면서도 “돈을 쏟아붓는 금융정책은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가 올 들어 지난달까지 모두 네 차례 지급준비율을 인하하자 시장에선 인민은행이 기준금리도 내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이를 부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리 총리는 다만 민간기업 자금난이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선 “자금이 잘 융통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강 인민은행장은 현재 중국의 유동성이 충분한 상태라고 진단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민간기업에 자금이 제대로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체계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리 총리는 경제 하방 압력을 막기 위해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절대로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위안화 평가절하를 하지 않는다”고 반박하면서 “우리는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수준에서 (환율의) 안정을 유지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리 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보호무역에 깊은 우려를 밝히며 다원주의를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경제 역시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며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주의와 일방주의에 반대하고 무역 규칙 개선, 투명성 강화, 무역 및 투자 자유화 등을 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중국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서비스업의 대외 개방을 가속화하는 한편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기술의 강제 이전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내와 외국 기업을 동등하게 대우할 것이라며 “세계 수준의 기업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중국 경제가 미국과의 무역 마찰 등으로 안팎에서 압력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