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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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형 가상화폐(암호화폐)인 ‘시큐리티 토큰’이 블록체인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간 유틸리티 토큰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다가 최근 부상한 것이다. 암호화폐 시장의 판세를 바꿀 수 있는 트렌드라 이목이 쏠린다.

암호화폐는 크게 유틸리티 토큰과 시큐리티 토큰으로 나뉜다. 유틸리티 토큰은 서비스나 상품과 연동되는 게 특징이다. 서비스제품에 대한 권리를 지닌 일종의 사용권 성격 암호화폐라 할 수 있다. 시큐리티 토큰은 특정 주체가 투자 성격으로 발행한다. 미래 영업이익에 대한 수익을 약속하거나 실물 자산을 거래할 수 있게끔 했다.

그동안에는 유틸리티 토큰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시큐리티 토큰에 비해 증권법 등 기존 법령상 규제를 받지 않아 운신의 폭이 컸다. 서비스나 제품과 연동해 ‘실체’가 있으며 따라서 실용성도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선 뒤 서비스 가치에 연동된 유틸리티 토큰은 큰 가치 하락을 겪었다. 암호화폐 가치를 보장할 매력적인 실물 자산이 존재하지 않는 탓이다. 반면 시큐리티 토큰은 주식과 같은 성격을 지녀 실물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암호화폐 가치를 보장할 자산도 존재할 수 있어 가치를 유지하는 데도 용이하다.

시큐리티 토큰이 각광받지 못했던 것은 복잡한 기존 규제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기존 기업공개(IPO)과 비교해 암호화폐 공개(ICO)는 각종 규제 준수 의무가 훨씬 덜했다. ICO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데 있어 시큐리티 토큰은 알맞지 않았다. 여러 규제를 받는 데 대한 업계의 거부감은 컸다. 실제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이더리움에 대한 증권법 적용을 검토하거나 모든 ICO를 증권법으로 규제하겠다는 견해를 내놓자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하기도 했다.

이처럼 단점으로 꼽히던 규제가 암호화폐 관련 규제의 ‘불확실성’ 문제가 장기화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불법과 합법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유틸리티 토큰보다 기존 증권법만 준수하면 문제가 없는 시큐리티 토큰이 기업가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까다롭긴 하지만 명확한 규제가 불분명한 규제보다 낫다”는 얘기다.

나아가 주주 자본주의가 지닌 문제점을 시큐리티 토큰으로 바꾸자는 ‘큰 그림’이 더해졌다.

시큐리티 토큰의 성격이 보다 구체화되며 빈부격차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문제의식이다. 주식회사 제도가 등장해 부의 불평등 해소에 역할을 했지만, 주주와 노동자가 분리됐다는 한계가 지적됐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스톡옵션, 우리사주 등의 제도가 나오기도 했다.

근본적으로 회사가 노동자에게 시큐리티 토큰을 지급하면 수익을 합리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 관계자에게 시큐리티 토큰을 지급하는 모델도 가능하다. 공유경제 기업 에어비앤비와 우버가 호스트나 드라이버에게 주식을 나눠주기 위해 SEC에 허락을 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노동자나 주주는 아니지만 공유경제 모델에선 매우 중요한 행위자다.

기여분에 따라 보상을 제공하는 암호화폐의 구조는 무임승차를 배제한다. 암호화폐는 매우 작은 단위까지 나눌 수 있어 주식에 비해 노동자나 일반인의 접근성이 높다는 장점도 있다. 궁극적으로 지분을 가졌을 뿐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는 주주와, 회사를 위해 일하지만 지분은 없는 노동자 간의 괴리를 해소하는 셈이다. 실물 자산을 쪼개 가치를 분배하는 시큐리티 토큰은 암호화폐의 방식을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줄 수 있다.

김서준 해시드 대표는 지난달 23일 ‘2018 코리아 블록체인 엑스포’의 강연자로 나서 “시큐리티 토큰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로 지적되는 빈부격차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이 회사에 기여한 만큼 수익을 공유하기 위한 도구가 시큐리티 토큰”이라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시큐리티 토큰에 주목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SEC는 암호화폐를 증권법 내에서 다루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나스닥도 ‘증권형 암호화폐 공개(STO)’ 플랫폼 개발을 추진 중이다. 금융 당국 승인을 받은 ICO 가운데 증권 성격을 지닌 암호화폐는 크라우드 펀딩처럼 일반 투자자에게 공모하고 매매 가능하도록 만든다는 내용이다.

10년 전 비트코인의 탄생으로 법정 화폐 대체를 내걸고 등장한 암호화폐가 이제는 주주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암호화폐의 진화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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