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폰도 실패한 나노섬유 양산…사업다각화 나서는 톱텍
2007년 이재환 톱텍 회장(사진)은 고교 동기인 김익수 일본 신슈대 섬유학부 교수를 만나기 위해 신슈대를 찾았다. 김 교수는 “꿈의 섬유라 불리는 나노섬유가 있는데 대량 생산을 못하고 있다.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면 대박일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장비라면 자신 있었다. 김 교수가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장비를 지원하고 투자했다. 톱텍은 3년 만인 2010년 대량 생산 장비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 화학업체 듀폰도 도전했다가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자동화장비 협력사 톱텍이 나노섬유 대량 생산 기술로 본격적인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톱텍 자회사 레몬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미국 아웃도어 의류업체 노스페이스와 아웃도어용 나노섬유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레몬은 2021년까지 3년간 최소 495만㎡의 아웃도어용 나노섬유를 공급하기로 했다. 이는 아웃도어 재킷 200만 벌가량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나노섬유는 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굵기의 초극세사로 짠 섬유다. 달걀 속껍질과 비슷한 구조로 가볍고 방수성과 통기성도 뛰어나다. 계약식에 참석한 스콧 멀린 노스페이스 미국 글로벌사업부장(부사장)은 “내년 가을 퓨처라이트란 새로운 브랜드로 나노섬유를 적용한 아웃도어용 재킷 바지 장갑 모자 신발 등 제품을 세계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라며 “기존 제품에 비해 통기성은 수만 배, 방수성은 50% 이상 뛰어난 제품”이라고 밝혔다.

노스페이스는 국내는 물론 일본 체코 등 세계 각국 기업의 나노섬유를 가져다 시험한 뒤 레몬과 계약을 맺었다. 김효규 레몬 대표는 “톱텍의 탄탄한 장비 기술을 기반으로 생산한 레몬의 나노섬유가 품질력은 물론 양산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레몬은 나노섬유 대량 공급을 위해 지난 9월 연간 1500만㎡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구축했다. 내년 2월 가동을 목표로 연 1050만㎡ 규모의 생산라인도 추가 증설 중이다. 증설을 완료하면 기존 생산라인(연 700만㎡ 규모)과 합쳐 연간 3250만㎡의 나노섬유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레몬은 나노섬유를 생리대와 마스크팩 시트, 황사용 마스크, 의료용품 등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이 회장은 “국내외 위생용품업체, 프랑스 로레알 등 화장품업체 등과 공급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내년 초쯤엔 나노섬유를 적용한 생리대와 마스크팩 제품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다. 레몬은 나노섬유사업을 통해 내년에만 5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내년 전체 매출을 올해 400억원에서 900억원으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2021년까지 매출 30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톱텍은 지난달 30일 이스라엘 대표 투자펀드인 요즈마펀드를 대상으로 1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투자자금과 톱텍의 자동화장비 기술로 이스라엘과 미국의 요즈마연구소가 보유한 바이오 및 광통신 원천기술 사업화에 나설 예정이다. 톱텍 관계자는 “요즈마가 조만간 추가 투자할 예정”이라며 “총 투자 규모가 요즈마의 국내 투자 가운데 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