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청와대의 한 경제 참모는 “경제 현안에 대한 대통령 보고 일정을 잡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 관련 보고 일정이 워낙 빡빡하게 잡혀 있어 빈틈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 경제보다 남북문제 집중…김동연 월례보고도 안 지켜져
실제 청와대가 공개한 문 대통령의 비공식 일과를 살펴본 결과 국내 경제 및 정책 현안을 다루는 정책실보다 외교·안보를 관장하는 국가안보실의 대면 보고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월례 보고’는 올 들어 단 한 차례에 그친 것으로 기록됐다.

25일 한국경제신문이 문재인 대통령의 올해(1월1일~10월12일) 일과를 전수 조사한 결과 문 대통령은 총 488회 비서실 보고를 받았다.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현안을 살펴보는 비서실의 특성상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 최대 4~5회의 대면 보고를 한 날도 있었다. 청와대가 일정을 공개하지 않는 부속실 보고를 제외하면 비서실의 대통령 보고 횟수가 가장 많았다. 유럽 순방을 떠나기 직전인 지난 12일에는 오전 9시35분과 11시33분, 오후 2시30분과 3시4분 등 하루 네 차례 보고가 이뤄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수락 등 유럽 순방 기간 외교·안보 분야 현안이 산적해 있었던 만큼 같은 날 국가안보실의 보고 횟수도 세 차례나 됐다. 이를 포함해 올해 문 대통령이 안보실 보고를 받은 것은 총 290회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현 정부의 특성상 어느 정부보다 안보실의 대통령 보고 시간이 월등히 많다는 분석이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이끌고 있는 안보실은 이상철 1차장이 담당하는 안보전략, 국방개혁 등의 분야와 남관표 2차장이 관할하는 외교·통일정책부문으로 나뉜다. 남북문제부터 대미 관계 등의 외교 현안, ‘기무사 계엄 문건’ 등 국방 이슈가 안보실 소관이다.

대통령의 관심이 외교·안보로 쏠리는 동안 상대적으로 경제 현안에 쓰인 대통령의 시간은 적었다. 경제·사회·일자리 수석을 두고 있는 정책실의 대통령 보고 횟수는 228회로 안보실의 78%에 그쳤다. 청와대의 한 경제 참모는 “남북 현안이 워낙 중요하다 보니 경제 관련 보고를 현실적으로 잡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한·중·일 정상회의, 한·미 정상회담이 진행된 지난 5월에는 안보실과 정책실의 보고 횟수 차이가 18회나 벌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4·27 판문점 선언 이후 정부의 관심이 온통 남북 관계에 쏠린 데다 미·북 정상의 첫 만남을 두고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그러나 고용악화와 경제성장률 하락 등으로 국내 경제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경제 문제’를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총괄하고 있는 김광두 부의장은 “우리 경기가 침체국면의 초입 단계에 있다고 본다”고 경고했다.

특히 청와대가 공개한 대통령 일정에는 정례화하기로 했던 김 부총리의 대통령 월례보고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록상 경제부총리의 대통령 보고가 한 번뿐이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일정 기록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의 개인 일정이나, 부속실 같은 특수한 보고를 제외하고는 모든 일정을 공개하고 있다”며 “누락된 업무 일정은 없다”고 엇갈린 답변을 내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평화가 경제’라고 하지만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정책적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