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룡 고려제약 회장이 전시작 ‘자유-질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박해룡 고려제약 회장이 전시작 ‘자유-질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화가이자 미술 애호가인 박해룡 고려제약 회장(83)에게 그림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인 동시에 그를 에워싸고 있는 경영환경에 대한 도전이다. 박 회장은 열여섯 나이에 경동고 미술반에서 김진명 화백을 만나 처음 배운 그림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이해하고 접점을 찾으려 부단히 애써 왔다. 성균관대 약대를 졸업한 후 종근당에 입사해 25년가량을 월급쟁이로 생활하다 1982년 고려제약을 창업해 병들어 아픈 사람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한 그의 간절한 마음은 이제 색채와 형태로 배어 나온다. 팔순을 넘은 나이에도 붓을 곧추세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우며 마음으로 덕을 쌓고 싶다는 그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

‘그림 그리는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한 박 회장이 한국경제신문 창간 54주년을 맞아 다음달 1일까지 서울 청파로 한경갤러리에서 초대전 ‘삶에 물들이다’를 연다. 지난 12일 개막한 이번 개인전은 경영인의 삶과 예술적 상상력을 일치시키는 박 회장의 도전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자리다. 옛 그림 몇 점을 빼고 전시장을 채운 30여 점의 풍경화는 모두 수십 차례 현장 답사로 일군 근작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박 회장은 “경영과 미술은 ‘도전과 열정’이라는 코드로 통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기업을 운영하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5년 회사 경영을 아들(박상훈 사장)에게 넘겨주고 틈나는 대로 그림 작업을 병행해왔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오전 7시30분까지 화필을 든다.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것은 2000년 초. 화가인 여동생에게 기본기만 배운 그는 처음에는 주로 인물화를 그렸다. 미술의 기본 토대가 데생이란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주로 말과 풍경화에 빠져 있다. 해외 스케치를 나가기도 했고 말 서식지를 찾기도 했다. 그동안 그린 작품은 300여 점에 이른다.

그는 “국내외를 여행하며 수많은 풍경을 화폭에 녹여냈다”면서 작품을 보여주며 각양각색의 말 그림 및 풍경화의 이름과 스토리를 들려줬다. “말 그림은 서귀포 말 서식지를 찾아 그린 겁니다. 서식지도 아름답지만 말들의 질주 본능과 역동성에 매료됐어요. 베트남 다낭,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시칠리아, 미국 동부 항구 로드아일랜드의 풍경도 화폭에 담았고요.”

풍경화라는 회화적 형식 속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의 그림에는 지각적 체험의 차원과 지적 정보 제공의 차원이 한데 결합돼 나타난다. ‘박해룡 풍경화’의 핵심은 유목민과 같은 자유로운 이동에서 얻는 ‘시선’이다.

박 회장은 최근 사재 100억원을 들여 올해 말 착공을 목표로 경기 여주시에 미술관도 짓고 있다. 그에게 미술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매달릴까.

박 회장은 “산고에 비유되는 예술 창작에 뛰어든 것은 못다 이룬 꿈과 새로운 도전을 향한 열정 때문”이라며 “그동안 상품이나 서비스로 대중과 소통하던 것에서 다른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경영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과정의 연속이죠. 잘 짜여진 구도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마음이 평안해지고 즐거워하면 제 소임은 끝난 것입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