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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거꾸로 가는 '파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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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철 논설위원
    [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거꾸로 가는 '파견법'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한국 정부에 요구한 첫 주문은 노동시장 유연화였다. IMF의 서슬에 김대중 정부는 1998년 2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노동계의 거센 반발과 여야의 졸속 절충 탓에 당초 취지와는 달리 ‘근로자 보호’에 방점이 찍힌 법으로 변질됐다. 파견 분야를 제조업을 제외한 운전·청소 등 26개 업종(2007년 32개 업종으로 확대)으로 제한했고, 파견 기간 2년을 넘기면 고용주가 직접 고용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노동 유연성 확보' 法 취지 역행

    파견법이 시행되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속출했다. 엄격한 노동 관련법 탓에 저(低)성과자도 사실상 정리할 수 없는 기업들은 정규직을 늘리지 않기 위해 파견근로자를 2년마다 교체했다. 파견법이 보호하고자 했던 비정규직 고용 안정성이 되레 위협받았다. 반면 대기업 중심의 정규직들은 강성 노동조합을 앞세워 임금 인상, 복지 확대 등 기득권을 계속 강화했다.

    고용 환경을 신축적으로 만들어 일자리를 늘리려던 파견법이 과도한 업종 제한 탓에 고용 창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間隙)을 확대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노동개혁에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10여 차례에 이르는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사내하도급 요건 강화, 불법 파견 요건 확대 등으로 노동시장 경직화에 앞장섰다. 파견법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이후 제조업 사내하도급을 무력화하는 도구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첫 사례가 불법 파견으로 결론 내려진 하이닉스매그너칩 사내하도급 사건이다. 청주지방노동사무소가 ‘적법 도급’이라고 판정했지만, 노동계의 대규모 투쟁을 겪자 대전지방노동청이 ‘불법 파견’으로 번복했다.

    법조계도 ‘사용자가 사내하도급 직원을 지휘·명령하고, 채용·평가·승진 등 인사기준 제시’ 등 ‘불법 파견’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방향으로 판례를 굳혔다. 포스코는 생산관리시스템(MES)을 통해 협력업체와 작업 관련 정보를 공유했다는 이유로 2심(광주고법)에서 ‘불법 파견’ 판결을 받고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광주고법이 MES를 통한 업무 정보 공유를 ‘사실상의 업무 지시’로 판단한 것이다. “이런 기준이라면 대다수 기업은 사내하도급을 통한 작업을 사실상 포기해야 할 상황”이라는 게 업계 하소연이다.

    주요 선진국은 파견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다. 독일은 2003년 건설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사용 기한 제한을 없앴다. 일본은 1999년 정해진 업종만 파견이 가능하도록 하는 ‘포지티브’ 방식에서 특정 업종만 빼고 모두 가능한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꿨다. 파견을 허용하면 기업이 쉽게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나 근로자에게도 이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만 고용 막는 파견규제 강화

    20년 전 법 제정 당시에 비해 고용 환경과 형태가 크게 달라졌는데도 한국만 유독 ‘낡은 법’을 강화하고 더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매년 한국에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지 말고, 정규직 보호를 줄이는 등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라”고 권고할 정도다. 근로자 이익을 대변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의 파견근로 입장도 ‘원칙 허용, 남용 금지’다.

    탄생 이유가 노동시장 유연화인 파견법이 국내에선 일자리를 줄이고 고용 갈등을 유발하는 주범이라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낡은 파견법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바로잡지 않고는 정부의 일자리 창출 노력도 제대로 힘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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