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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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에선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됐을 때 ‘넷플릭스트(Netflixed·넷플릭스당하다)’란 말을 쓴다. 넷플릭스의 혁신에 밀려나는 기업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1997년 온라인 주문 방식의 DVD 대여업으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창업 10년 뒤인 2007년부터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에 투자해 시장의 판도를 바꿔놨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갑자기 모든 기업이 넷플릭스가 되려 한다”고 전했다. 케이블TV 가입비를 내거나 티켓을 사서 영화를 보는 대신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통해 스마트TV·스마트폰 등 원하는 기기로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것이 대세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로 빠르게 전환하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폭넓게 확보한 ‘퍼스트무버(선도자)’가 된 비결은 뭘까. 다음달 6~7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리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8’에서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특별대담에 나서는 제시카 닐 넷플릭스 최고인재책임자(CTO·사진)는 “직원들이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기업을 운영하는 문화가 넷플릭스의 혁신을 이끈 핵심 전략”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방해하지 않을수록 직원들은 더 놀라운 일을 해낸다"
▶넷플릭스는 온라인 DVD 대여에서 스트리밍으로 서비스 방식이 완전히 바뀌는 시기를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기업이 엄청난 변화를 겪을 때 인력 관리 측면에선 무엇을 염두에 둬야 할까요.

“문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넷플릭스에서 문화는 우리가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한 전략입니다. 문화를 ‘기업을 운영하는 뼈대(operational framework)’로 생각해 보세요. 우리 문화의 주요 교리(tenet)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인재를 채용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수단을 제공한 뒤 그들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방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걸 ‘자유와 책임’이라고 부릅니다.”

▶최고의 인재가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 회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최고의 인재가 계속 회사를 다니면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회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율성을 주고, 솔직하게 대하면 됩니다. 그에 걸맞게 보수도 줘야 하죠.”

▶좋은 업무 환경과 높은 연봉을 줄 여력이 없는 스타트업이 실행하기 어려운 방법이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사람들이 ‘공짜 점심’을 먹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회사로 달려가진 않습니다. 특전이나 간식으로 인재들을 회사에 붙잡아 둘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그보단 지속적인 동기 부여가 중요합니다.”

▶넷플릭스가 변화를 선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넷플릭스는 독특해요. 회사를 떠났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더욱 잘 알게 됐죠. 넷플릭스의 장점은 재능 있는 사람들을 뽑고 그들에게 자유와 책임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즉 넷플릭스엔 엄격한 규율과 쓸데없는 절차가 없죠. 예를 들어 넷플릭스는 비용을 처리할 때 직원들이 회삿돈을 자기 돈처럼 쓰면 된다는 철학이 있습니다. 직원들이 훌륭한 결정을 하고 좋은 판단력이 있다고 믿는 겁니다. 그러면 직원들이 힘을 발휘해 스스로를 제어하는 동시에 창의적으로 일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놀라운 일들을 해내는 것이죠.”

▶직원들이 놀라운 능력을 펼치게 하는 업무 환경은 어떤 것입니까.

“대부분의 기업은 변칙을 만들지 않으려고 통제합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비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직원 대부분이 책임감을 느끼고 올바른 방식으로 일하면 됩니다. 경영진은 큰 맥락을 제시한 뒤엔 직원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직원들을 방해하지 않을수록 그들은 더 놀라운 일을 해냅니다.”

▶2006년 입사해서 7년간 넷플릭스의 성장을 함께했습니다. 2013년 넷플릭스를 떠나 코세라의 인적자원(HR) 총괄로 이직하기도 했는데요.

“리크루터로 일하면서 넷플릭스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넷플릭스는 제가 맡은 클라이언트 중 하나였죠. 넷플릭스에서 계속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습니다. 온라인 DVD 대여에서 스트리밍으로 서비스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인력 교체를 도와달라는 요청이었죠. 2006년 마침내 제안을 승낙하고 넷플릭스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넷플릭스 직원들은 내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똑똑했고, 그들은 인재가 곧 전략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어떤 회사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죠. 이후 7년간 인재를 끌어들이고, 문화를 진화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넷플릭스는 스트리밍이란 목적지에 도달한 뒤 ‘하우스오브카드’ ‘오렌지이즈더뉴블랙’ 등 콘텐츠를 제작하고 글로벌 기업이 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넷플릭스를 떠났죠. 또 다른 훌륭한 기업을 세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을지 알고 싶었어요.”

▶4년이 흐른 지난해 CTO로 넷플릭스에 다시 합류했는데요. 복귀 이유가 궁금합니다.

“넷플릭스를 떠난 뒤에도 리드 헤이스팅스 최고경영자(CEO)와 계속 연락했어요. 1년 반 전쯤 넷플릭스로 돌아갈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헤이스팅스도 같은 생각이었고요. 떠나 있었을 때도 마음은 늘 넷플릭스와 함께 있었어요. 전혀 떠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비로소 저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다른 회사에서 가르치려고 노력했던 그 언어 말입니다.”

▶회사를 떠나 있는 동안 넷플릭스의 글로벌 시장이 커졌습니다. 인재 관리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습니까.

“넷플릭스는 하나의 문화를 고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문화를 진화시키려고 하죠. 제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실리콘밸리, 싱가포르 그리고 서울 등에도 상주하는 팀이 있습니다. 그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일할 수 있고 문화와 규모, 팀원의 인적 구성에 따라 특성이 있다는 것이 멋진 일이죠. 하지만 더 매력적인 점은 그들이 모두 넷플릭스의 문화와 가치 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일본에 있는 사무실과 LA에 있는 사무실의 일하는 방식이 약간 다를 수 있지만 결국 하나의 북극성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해나가기 때문이죠.”

■제시카 닐 넷플릭스 최고인재책임자

△1977년 미국 켄터키주 출생
△1998년 미국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 졸업
△2006~2013년 넷플릭스 인재담당 부사장(VP)
△2013~2015년 온라인교육플랫폼 코세라 인적자원(HR) 총괄
△2015~2017년 모바일게임업체 스코플리 최고인력책임자(CPO)
△2017년~ 넷플릭스 최고인재책임자(CTO), 인재개발협회(ATD) 이사회 위원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