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남북한 정상회담에 이어 미·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까지 높아지면서 한반도에 또다시 훈풍이 불고 있다. 자연스럽게 북한 관련 이야기에 대중의 눈과 귀가 쏠린다. 올 상반기에도 1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 공사가 출간한 증언집이 큰 인기를 끌었다.

태 전 공사 증언집과는 결이 다른 책이 나왔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탈북민이자 현직 신문기자인 주성하 씨가 쓴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다. 제목부터 매우 도발적이다.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의 본거지인 평양에 ‘자본주의’라니 말이다. 북한은 옛 소련 연방국가들처럼 사회주의가 붕괴돼 시장경제로 본격 전환하지도 않았고 중국과 베트남처럼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지도 않았다. 비교할 만한 유사 사례가 없다. 이를 두고 저자는 “북한의 시장경제화는 갈라파고스식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책은 물물교환으로 시작했던 장마당이 북한 내 환율을 움직이는 등 북한 경제를 이끄는 가장 큰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먼저 언급한다. 또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뇌물’이다. 뇌물의 존재는 개인에게 사적 이익을 챙겨주는 문화가 형성됐다는 걸 의미한다. 저자에 따르면 북한에서 뇌물만 건네면 장마당에서의 개인 영업은 물론 위법행위 무마, 대학 진학, 취업 알선, 편한 지역 군 복무부터 국경을 넘는 일까지 모두 가능하다. 북한 핵심권력층은 그렇게 모은 뇌물로 평양에서 강남 부자 못지않은 호화생활을 누린다고 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평양 시내 아파트 재건축 바람과 투기 열풍이 가히 한국 못지않다는 점 역시 매우 흥미롭다.

책은 2002년 저자가 탈북할 때와 현재 북한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현재 평양에 살고 있는 시민을 전화와 이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취재했고, 그들의 감수를 거쳤다. 그 때문인지 외부인에게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말하는 평양 시민의 이야기가 아닌, 다소 거친 그들의 속살과 뒷골목 이야기로 가득하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