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건전한 1주택'까지 투기로 몰아붙이니
베이비부머라고 한다. 6·25전쟁 직후부터 가족계획 정책이 시행된 196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난 세대다. 정말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던 세대다.

베트남과 중동은 그 가난의 탈출구였다. 원조 기러기 아빠들이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고, 열사의 땅에서 눈물로 모래밥을 삼켰다. 하루 18시간 일하던 근로자들, 조악한 상품을 들고 세계 시장을 뛰어다닌 상사원들, 고단하긴 모두 마찬가지였다.

가장들은 번 돈을 모두 집으로 보냈고 아내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맸다. 그렇게 단칸 셋방을 벗어나 꿈에 그리던 마이홈을 일궜다.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다. 더 나은 주거와 교육 환경을 찾아 이사했다. 친구 따라 강남도 갔다. 그렇다고 내 집에 살아본 적도 없다. 남에게 세를 주고 전세로 전전해온 사람들이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출퇴근 버스 속에서 꾸벅꾸벅 졸아대면서도 내 집을 가졌다는 뿌듯함에 피곤한 줄 몰랐다.

지금은 대부분 은퇴 생활에 들어간 우리네 60대들의 자화상이다. 물론 큰돈을 번 부자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녀들을 번듯하게 키워 내느라 남긴 게 고작 집 한 채다. 이제 그 집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게 남은 꿈일 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갑자기 투기꾼이 됐다. 정부의 겁박은 남을 두고 하는 얘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얼마 전 우체통에서 재산세 통지서를 뽑아보고 내 얘기로 돌변했다. 게다가 1주택자도 종합부동산세가 크게 오른다고 하지 않던가.

죄라면 갖고 있는 집 한 채다. 내가 내 집을 깔고 앉았는데 무슨 투기를 했다고 ‘징벌적 과세’란 말인가. 투기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 가처분소득이 생긴 것도 없다. 집값이 올랐을 뿐이지 내가 집값을 올린 적은 없다. 그런데 웬 세금 폭탄이냔 말이다.

집을 팔아치우지 않고선 세금을 낼 방도가 없다. 은퇴자에게 소득이 있을 리 없다. 자식들에게 집이라도 물려주려면 이 나이에 생업 전선에 나서야 할 판이다. 그래 좋다. 자영업이라도 해보자. 그런데 그것도 불가능하다. 민생의 근본인 1주택을 활용하는 방법도 다 막아 버렸다.

“노인네들이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 가시지 왜 굳이 강남에 살려고 애를 쓰시는지…”라며 이죽댄다. 경제대국을 일군 주역들이다. 이런 비아냥이 어디 있는가.

그래, 비아냥대로 세금을 낼 여력이 안 되니 집을 팔자. 하지만 1주택자들에게도 양도소득세 부담을 늘렸다. 대관절 어쩌란 말인가.

정부가 정책을 잘못 펴 집값이 올랐다. 그러면 정부가 책임질 일이다. 일곱 차례나 헛발질하면서 부동산 가격에 군불을 땐 청와대와 돌출발언으로 서울 집값에 불을 지른 박원순 서울시장은 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작은 평수의 1주택자 노인들에게까지 책임을 떠넘기느냔 말이다.

이들이 투기세력이면 집값이 엄청 올랐다는 장하성, 김현철 등 주요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아예 투기꾼이다. ‘모든 사람이 강남에 살 이유 없다’던 장하성, ‘집값으로 장난치지 말라’던 김현철이다. 투기꾼이 정책을 주무르니 투기가 근절될 리 있겠는가.

투기를 잡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투기꾼만 잡으면 되지 왜 국민 모두에게 총부리를 겨누느냔 말이다.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뭉뚱그려 투기로 몰아붙이는 한심한 능력자들이다.

여당은 한술 더 떠 토지공개념을 주장한다. 이들은 헨리 조지와 구약성경의 ‘희년(Jubilee) 사상’을 인용한다. 하지만 희년에는 토지를 반환해야 한다는 좌파 기독교의 해석만을 인용할 뿐 노력이 켜켜이 쌓인 땅과 집의 소유권은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는 구약의 본뜻은 말하지 않는다.

일정 기간 보유한 1주택은 땀 흘린 노동의 대가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사회주의다.

투기를 유발한 정책 당국자들부터 처벌하라. 정책 실패를 국민에게 떠넘겨 쓸데없이 골탕 먹이지 말란 말이다.

그다음 투기꾼을 선별적으로 찾아내 ‘핀셋 과세’하라. 그러면 될 일이다. 골라내는 게 쉽지 않다고 ‘무차별적 세금 폭탄’을 투하하는 것은 스스로의 역할을 포기한 정부다. 국민 40%가 1주택자다. 건강한 노력으로 집 한 채 갖고 있는 대다수 국민을 더 이상 바보로 만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