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고용 가로막는 규제 늘린 '일자리 정부'
기업 설비투자 감소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8월까지 취업자 증가폭은 작년 동기의 3분의 1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는 수출과 기업 실적이 모두 좋았고 주가도 상승세였다. 과거 정부의 ‘은근한 증세’ 덕분에 세수도 풍족했다. 대기업과 각을 세우던 시민단체 출신이 국정을 장악하고 대기업 출자제한과 최저임금 인상 등 규제를 몰아붙인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일부 호황 업종이 기업에서 짜낼 것이 많다는 오판을 유발했다. 반도체와 석유화학이 수출 및 기업 실적의 평균치를 지나치게 끌어올린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한 반도체 착시의 데자뷔다. 김영삼 정부는 반도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에 매료돼 ‘세계화’를 내걸고 개방수위를 과도히 높이다 외화부도 위기를 맞았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도 있었지만 건실한 국가재정을 기반으로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 조기에 수습했다.

현재의 국가재정은 당시보다 매우 취약하다. 국가채무가 대폭 늘었고 급속한 고령화로 복지 부담도 무겁다. 반도체는 원가 중에서 변동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다. 매출 수량이 늘어나면 영업이익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법인세도 급증한다. 주주에 대한 배당금과 임직원 성과상여금에 대한 소득세도 30% 넘게 걷힌다. 외화가득률이 높아 외환관리 부담이 크지만 기술 및 기계장비 의존도가 높아 고용효과는 제한적이다. 반도체에서 얻은 이익을 연구개발과 사업 다각화에 더 배정해 불황에 대비해야 한다. 순환출자와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를 강화하면 자금이 지분율 방어용 자사주 매입 소각에 쏠리고 투자는 위축된다.

반도체 착시는 간과하고 평균만 따져 이익을 쌓아두고도 투자하지 않으니 세금으로 회수하겠다며 법인세 최고세율을 3%포인트 인상했다. 국제적 인하 추세와는 정반대인 우리만의 ‘홀로 인상’이다. 경쟁국보다 불리한 법인세는 투자와 일자리를 해외로 쫓아내는 몽둥이다. 세금 인하에 고무된 미국과 유럽 기업의 공세 때문에 자동차산업 등은 죽을 맛이다. 반도체 특수로 인한 낙관적 세수 전망은 복지 확대와 공무원 증원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 공헌 활동까지 범죄로 모는 상황에서 대기업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비인기 종목인 승마의 협회장을 맡아 선수훈련비를 지원한 삼성이 뇌물죄로 기소됐고 대법원 상고심에 계류 중이다. 4년 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4개를 획득한 승마는 이번에는 ‘노 골드’다. 종합성적도 오랫동안 지켜왔던 2위에서 격차 큰 3위로 주저앉았다.

경영 사정으로 보아 신규 채용 여력이 전혀 없으면서도 정부의 묵시적 압박에 채용을 결정한 회사 임원이 배임으로 소추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기업 책임자가 오늘 특별방문단으로 평양에 가는 것도 배임 또는 뇌물죄와 연관이 없는지 걱정이다.

2년 동안 29.1%나 오른 최저임금 때문에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날마다 수지를 맞추기 때문에 자영업자가 먼저 들고 일어섰을 뿐 중소기업과 대기업 모두 죽을 맛이다. 9급 1호봉이 최저임금에 위반되지 않도록 공무원 호봉표를 개정하는 작업도 골칫거리다. 업종과 규모별 차등 적용을 검토하고 임금에 포함시킬 범위를 재조정해야 한다.

생애 첫 직장을 잡지 못한 청년의 고통이 정말 안타깝다. 취업이 지체되면 결혼과 출산도 늦어지고 출산율은 더욱 추락한다. 반도체와 같이 고용탄성치가 낮은 산업에서는 연구와 신사업 개발 부문에 신규 채용을 집중해야 한다. 경기가 꺾여 사업이 위기를 맞아도 고용조정이 거의 불가능한 현행 고용규제를 개선하고 정년연장의 전제조건이었던 임금피크제를 조기에 정착시켜 신규 채용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

중소기업에 대한 채용보조금을 회사에 지급하면 부정수급 위험이 커진다. 근로자들이 지원금 일부를 나눠줄 것을 요구하는 노사갈등 요인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지급받은 급여에 따라 국세청에 신청하는 근로장려금과 중소기업 근로자 장기저축에 대한 특별이자 형식의 지원이 보다 효과적이다. 중소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근로환경 개선에 정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기업가의 투자 의욕과 근로자의 열정이 제대로 융합해야 경제 활력을 되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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