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공처럼 튀는 ‘변종 가을장마’가 곳곳에서 연일 물폭탄을 쏟아내고 있다. 시간당 40~50㎜에 달하는 집중호우가 계속되면서 2011년 7월 인명 피해까지 낸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등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상청은 29일 “밤부터 30일 낮 12시까지 경기 북부에 250㎜, 서울과 경기 남부에 80~150㎜가 더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다.서울시는 이날 오후 10시부터 성북구와 종로구, 강북구, 도봉구, 서대문구에 산사태 주의보를 발령했다.이날 강원 북부·경기 북부 지역에 호우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행정안전부는 각 부처가 참여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비상1단계’를 발령하고 대응에 나섰다. 행안부 관계자는 “앞선 강우로 인해 토양이 많이 약해져 산사태 발생 위험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이날 오후에 경기 포천·연천·가평, 강원 화천·양구·철원·인제 등 7곳에 산사태 경보를 내렸다. 인천 중구, 경기 파주·이천, 강원 양양·속초·고성·춘천, 경북 영주·봉화 등 9곳엔 산사태 주의보를 발령했다.오전 9시부터 내내 잠잠하던 서울엔 오후 5시께 비구름대가 갑자기 덮치면서 8시까지 3시간 동안 47㎜에 달하는 물폭탄이 쏟아졌다. 기상청은 오후 6시40분을 기해 서울에 호우경보를 내렸다. 28일부터 이날 오후 8시까지 서울 지역 강수량은 도봉 187㎜, 강북 183㎜, 은평 173㎜, 성북 140㎜, 노원 125㎜를 기록했다.동부간선도로 월릉교 부근에선 폭우에 차량이 침수돼 40대 남성이 익사한 채 발견됐다. 중랑천이 이날 오후 범람 수위에 다다르면서 동부간선도로는 전면 통제됐다. 이번 집중호우로 수도권 주택 및 상가 1000곳 이상이 침수됐다.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엔 이날 오후까지 집중호우가 이어졌다. 28일부터 이날 오후 8시까지 누적 강수량은 경기 연천 446㎜, 포천 432㎜, 강원 철원 431㎜, 동두천 406㎜, 고양 401㎜, 파주 380㎜ 등으로 나타났다. 연천과 포천에 폭우가 집중되면서 임진강 최북단 남방한계선에 있는 필승교와 군남홍수조절댐 수위도 한때 위험 수치에 근접했다.이날 오전 5시부터 6시까지 1시간 동안 113㎜에 달하는 ‘물벼락’이 쏟아진 강원 철원에선 불어난 물에 갇혀 고립된 주민 신고가 빗발쳤다. 소방당국은 전국에서 이 같은 고립인원 124명을 구조했다.비구름대가 예측불허의 집중호우를 뿌려대는 모습에 기상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통상 가을장마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차고 건조한 대륙고기압이 남쪽의 따뜻하고 습한 북태평양고기압과 만나 남쪽 공기를 밀어올리면서 생긴 정체전선이 비를 뿌린다. 지속 기간도 짧고 장소 예측도 비교적 쉽다.그러나 이번 변종 가을장마는 두 고기압 간 힘이 거의 비슷해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에서 정체전선이 소멸되지 않고 오락가락 옮겨다니며 비를 퍼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상청 관계자는 “남서쪽에서 수증기가 계속 유입되면서 비구름대가 새로 만들어지고 있어 집중호우가 길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서울 지역에 기습적인 폭우로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치는 피해가 이어졌다. 29일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오후 9시께 월릉교 밑 동부간선도로에 차량 4대가 침수돼 도로에 떠내려가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구조활동을 벌였다. 당시 동부간선도로 의정부방면 3차선 도로가 3m가량 침수된 상황이었다.차량 4대는 곧바로 발견됐고 이 가운데 차량 1대에서 이 모(38) 씨와 배 모(64·여) 씨가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다.소방당국은 차주 등과 연락이 닿은 나머지 차량에서는 인명피해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1차 구조활동을 마쳤다.이어 오후 11시께 침수 차량 1대가 추가로 발견됐으나 당시 차 안에서 운전자가 발견되지 않아 수색 작업을 벌였다. 추가 발견된 차량의 운전자 김모(49)씨의 가족이 실종 신고를 하면서 수색 작업에 구조대원이 추가 투입됐다.김씨는 수색 작업 3시간 만에 도로 밖 중랑천으로 물을 빼내는 집수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경찰은 침수 차량들이 동부간선도로가 통제되기 전 진입했다가 갑자기 내린 비로 사고를 당했는지, 인근 지역에서 정차해 있다가 떠밀려 내려온 것인지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동부간선도로는 사고 당일 오후 7시께부터 부분통제, 오후 8시께부터 전면통제가 이뤄졌다.서울 곳곳에서는 이 밖에도 정전이나 땅꺼짐 현상 등 폭우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다.폭우와 함께 강풍이 불면서 전날 오후 8시 25분께 서초구 방배동에서는 공사장 철근이 배전반 쪽으로 무너져 인근에 있던 4층짜리 상가 건물이 30분간 정전됐다.노원구에서는 하계역 출구 에스컬레이터 공사장에서 반경 3m, 깊이 7m 크기의 땅꺼짐 현상이 발생했다.또 이날 오전 2시께는 월계동 한천초등학교 앞 인도에서 반경 20㎝·깊이 1m, 상계동 이면도로에서 반경 30㎝·깊이 2∼3m의 싱크홀이 발생했다.소방당국은 침수 차량 인명 구조를 비롯해 배수지원 521건, 안전조치 57건 등 폭우와 관련해 578건 지원 활동을 했다.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성질 다른 고기압 정체에 수증기 더해져 '물폭탄'…강수대 이동방향 급전환어제부터 오늘 오전 9시까지 철원 346.5㎜·서울 도봉 187㎜ 집중호우"당황스러움을 넘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상상하지 못한 현상이다."기상청 관계자는 강수대 이동방향이 갑자기 바뀌며 서울 곳곳에 시간당 5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진 28일 밤 놀라움을 이렇게 표현했다.기상청에 따르면 28일부터 29일 오전 9시까지 강수량은 서울 도봉 187.0㎜, 강북 182.5㎜, 은평 172.5㎜, 성북 140.0㎜, 노원 124.5㎜를 기록했다.서울 대표 측정소가 있는 종로에는 97.0㎜의 비가 내렸다.같은 기간 강원도는 철원(동송) 346.5㎜, 인제(서화) 250.5㎜, 양구(방산) 206.0㎜, 경기도는 포천(영북) 298.0㎜, 연천(왕징) 278.5㎜, 동두천(하봉암) 209.5㎜ 등의 강수량을 기록했다.제19호 태풍 '솔릭'이 24일 한반도를 빠져나간 뒤 마치 장마철 같은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솔릭'이 지나간 뒤 북쪽에서 찬 고기압이 내려와 남해안과 일본 남쪽에 걸쳐 있는 북태평양 고기압을 만나며 비구름이 형성됐기 때문이다.여기에 대만 부근 열대저압부가 소멸하며 나온 수증기가 중국 쪽에서 유입되면서 비의 강도가 세졌다.정관영 기상청 예보정책과장은 "성질이 다른 두 개 고기압의 세력이 비슷해 중부지방에 정체돼 있다"며 "서쪽에서 수증기까지 많이 들어오며 계속해서 비구름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전했다.이런 삼박자가 갖춰진 상황에서 비구름의 폭이 좁다 보니 제한된 지역에 매우 강한 비가 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정 과장은 설명했다.전날 밤 서울 일부 지역에 홍수주의보가 내려지게 한 '상상 범위 밖' 기습 폭우는 기본적으로 이런 틀 속에서 다른 요소까지 더해진 결과다.유희동 기상청 예보국장은 "(중국) 보하이만 북서쪽 상층의 한기가 서해를 지나 경기만 부근으로 매우 빠르게 접근했다"며 "이런 가운데 (황해남도) 해주 부근에서 작은 규모의 고기압이 생성돼 강수대가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았다"고 전했다.한기 유입 등으로 대기가 불안정해진 영향으로 서울 등에 강한 비를 뿌린 구름이 북쪽으로 옮겨가지 못하고 머물면서 홍수를 우려하는 상황까지 초래한 셈이다.비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열흘 뒤까지 날씨 정보를 제공하는 기상청 중기예보를 보면 토요일인 다음 달 1일까지 전국 곳곳에 비가 올 전망이다.현재 경기, 강원 북부에 호우특보가 발효 중이다.서울, 인천 등에는 예비 호우특보가 발효된 상태로, 이날 오후 호우특보가 발효될 전망이다.기상청 관계자는 "30일 오전까지 서울, 경기와 강원 영서를 중심으로 시간당 40㎜ 이상의 매우 강한 비가 내리고 돌풍이 불며 천둥·번개가 치는 곳이 있겠다"고 내다봤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