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 국가에 취항하는지는 이제 공식적으로 표시하지 않습니다.”

한 국적 항공사 관계자에게 운항 현황을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기존에는 ‘몇 개 국가, 몇 개 도시, 몇 개 노선에 취항하고 있다’고 안내했는데, 이제는 ‘국가’를 빼고 얘기한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중국 때문에…”라고 말끝을 흐렸다.

지난 4월 중국은 한국을 비롯한 외국 항공사 44곳에 공문을 보냈다. 항공사 웹사이트와 홍보자료에 대만 홍콩 마카오를 중국과 별개의 국가로 표기하지 말라는 요구였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취지였다.

중국은 항공사에 공문을 보내면서 “표기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항공사들은 하나둘 ‘백기’를 들었다.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라며 반발한 미국도 결국 중국 요구를 받아들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달 초 대만이 보복 조치에 나선 것이다. 대만 교통부는 대만을 중국의 일부 지역으로 표기한 외국 항공사에 대해 이착륙 시간을 뒤로 미루는 등의 불이익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한 외항사 관계자는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항공사들만 난처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항공사들이 국가 표기를 없애고 도시만 표기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불이익을 피해 가기 위해서다. 항공사들은 동북아시아 카테고리를 만들고 여기에 일본과 중국 도시들을 비롯해 대만 홍콩 마카오를 함께 묶어놓았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항공사는 중국 의존도가 커 중국 정부 방침을 무시하기 더욱 어렵다”며 “일부 외국 항공사는 이번 일을 계기로 아예 중국 노선을 줄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