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소비자 중심 결제 돼야 할 '소상공인 페이'
돈을 주고받을 때는 받을 사람이 줄 사람에게 자신의 금융 정보를 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은 소비자가 자신의 신용카드 정보 같은 금융 정보를 상인에게 알려줬다. 사업자만이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소비자가 강력한 컴퓨터인 스마트폰과 4G 이동통신 기술인 LTE 같은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모델이 변화할 여지가 생겼다.

필자는 2006년 국제 전자상거래 학술대회(ICEC 2006)에서 소비자가 강력한 모바일 기기와 네트워크 연결을 소유하는 환경에서의 새로운 결제 모델에 대해 발표했다. 이는 소비자의 스마트폰이 사업자의 정보를 받아서 결제를 주체적으로 수행하는 소비자 중심 결제 모델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모든 결제 기록을 모을 수 있고, 소비자 중심의 결제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상인에게 자신의 결제용 금융 정보를 줄 필요가 없으므로 스마트폰이나 금융회사 이외에는 어디에도 금융 정보를 저장할 필요가 없고, 결제 시에도 금융회사를 직접 연결해 승인받으면 되기 때문에 승인 비용과 해킹·부정 사용의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간편결제 부정 결제 사고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개인정보(성명, 주민번호)를 활용해 대포폰으로 본인 인증을 통과하고, 은행 계좌번호 등록만으로 돈을 인출할 수 있는 허점 때문에 빚어진다. 따라서, 새로운 결제 서비스는 소비자의 스마트폰이 금융회사와 직접 연결해 결제하는 ‘소비자 중심 결제’가 돼야 한다.

마침, 중앙정부와 여러 지방정부가 동시에 소상공인을 위해 새로운 결제 서비스를 하겠다고 나섰다. 여러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정부가 민간 결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정부가 직접 노를 저어서는 안 되고, 결제 서비스 혁신을 위한 촉매와 ‘메기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쳐야 한다.

신용카드 사용에 익숙한 소비자들을 이 결제 서비스 시장에 참여시키려면 새로운 거래를 일으키는 서비스가 필수적이다. 신용카드가 나오면서 현금이 필요 없는 결제가 가능해졌고, 휴대폰 소액결제가 나오면서 신용카드가 없는 젊은 층으로부터 온라인 게임 머니나 싸이월드 도토리를 구매하는 거래를 일으켰듯이, 새로운 결제 서비스가 창출할 새로운 응용 산업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도로변 주차공간을 적절히 유료화하면 도로 활용도를 높이는 동시에 소비자 중심 결제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사교육 등 각종 개인 간 용역 서비스에 이 결제 방식이 정착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선 주차장에서 QR코드 결제를 도입, 결제액이 늘어나고 불법 주차도 사라지게 한 사례가 있다.

또, ‘제로페이’라는 용어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수수료는 금융회사 간, 결제서비스 회사 간 경쟁을 통해 가격이 정해지도록 해야 한다. 가격에 직접 개입하면 부작용이 생기고 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누더기 정책을 낳는다.

소상공인과 주요 도시 중심의 지원이 이뤄지면 역차별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 특정 지역의 결제 서비스가 타 지역으로 퍼지는 것에도 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가 만든 서울페이를 부산이나 광주에서도 사용하게 되면, 서울 중심주의의 폐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여러 지방정부와 주체가 그들의 브랜드를 유지하면서도 소비자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구조를 갖춘 모델이 필요하다.

현재 결제 수수료가 높은 상황이라면 상인들은 가격에다 수수료를 반영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상인이 가격을 결제 방식에 따라 다르게 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법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좋은 금융, 좋은 결제는 좋은 산업을 만든다. 휴대폰 소액결제는 한국의 디지털 콘텐츠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결제 서비스를 소비자 중심으로 개혁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동시에 국외 진출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휴대폰 소액결제를 세계 시장에 진출시키지 못한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