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사립 고등학교 미식축구팀 감독은 매우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팀에 지원한 학생 중 ‘빅 마이크’라는 학생 때문이다. 빅 마이크는 이름 그대로 덩치가 나이에 비해 엄청 크고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또한 자기 희생정신도 갖춰서 팀 단합에 매우 헌신적이다. 감독은 팀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팀에 넣길 원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선생님들에 대한 설득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빅 마이크는 마약중독자인 어머니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현재 거처도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그 사실을 안 동료 선생님들은 모두 입학을 반대했다. 성적도 저조한 편이라 무작정 입학을 승인해달라고 밀어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운동 측면에서 보면 ‘빅 마이크’는 정말 뛰어난 신입생이다. 하지만 운동이 아닌 성적이나 가정환경으로 보면 아니다. 감독은 곤혹스러웠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그때 감독 눈에는 교무실 벽에 걸린 액자가 들어왔다. 감독은 선생님들을 설득할 묘수가 생각났다. “운동 때문이라면 빅의 입학을 거부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벽에 걸린 저 액자가 다만 장식용이 아니라면 빅을 입학시켜야 합니다.” 액자에는 ‘크리스천답게’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감독의 말은 학생을 가려 받는 것이 학교가 추구하는 ‘크리스천’의 신념에 반하는 행동 아니냐는 추궁이었다. 그러자 모두 입을 떼지 못했다. 얼마 후 빅은 무사히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협상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내 생각만으로 논리를 펴면 논쟁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 말이 옳다라는 식으로는 상대를 움직일 수 없다. 상대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는 것이니까. 따라서 내 편도 네 편도 아닌 객관적인 심판이 필요하다. 미식축구팀 감독은 교무실 벽에 걸린 액자를 ‘객관적인 심판’으로 활용했다.

인도의 민족해방 운동가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흑인 해방 운동가 마틴 루터 킹,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인종차별로 억압받던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물했다는 점이 있다.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부분이 또 하나 있다. 두 사람 모두 강요하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든 협상의 대가라는 점이다.

간디는 인도가 영국 치하에 있던 시절 민족해방을 위해 단 한 번도 큰소리를 낸 적이 없다고 한다. 대신 그는 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인들에게 항상 이렇게 물었다. ‘당신들은 문명화된 영국인이고,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고한 인도 국민을 죽이고 차별하고 있습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킹 목사의 접근법도 비슷했다. “미국 헌법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우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고 경험한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간디와 킹 목사는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거나 논리를 내세우지 않았다. 다만 상대가 예전에 했던 말이나 행동이 지금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알려주기만 했다. 상대방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규칙을 파악하고 이를 파고들어 자신의 협상력을 높인 것. 바로 이것이 ‘상대가 만든 기준’을 활용한 협상이다. 이 전략의 요점은 상대방이 다른 사람에게 적용할 원칙을 스스로에게도 적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 주장의 모순을 우회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상대방 말에 강하게 반박하고 상대방 잘못을 인정하라면서 밀어붙인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주의할 점은 상대방 표준의 모순이 많을수록 말투는 더욱 부드러워야 한다. 상대를 부드럽게 설득하려면 말이다.

이태석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