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폭염의 경제학
이번 여름은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무더운 여름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한반도를 에워싼 ‘열돔(heat dome)’ 현상으로 7월 중순 이후 한 달가량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폭염은 인간의 삶과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더위로 인한 노동 생산성 저하와 각종 농축수산물의 생산 감소, 온열질환자의 증대다. 이번 폭염이 경제 성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폭염으로 인한 국내 온열질환자는 지난 6일 현재 지난해보다 2.7배 많은 3329명에 달했다.

폭염으로 인한 소비행태의 변화도 업종 전반에 희비쌍곡선을 초래하고 있다. 냉방시설이 취약한 전통시장의 경기는 위축된 반면 냉방시설이 좋은 도심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매출이 급증했다고 한다. 폭염으로 인한 야외 활동 기피로 관광객이 줄어 여름 휴가 성수기를 노린 지방 관광지 상인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폭염은 무엇보다 농어민과 서민, 작업 환경이 열악한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에게 고통을 준다.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친 농어민, 냉방기기를 갖추기 어렵거나 전기료 부담으로 사용을 주저하는 중산·서민층, 작업할 때 폭염에 노출된 근로자들이 이번 폭염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폭염 피해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폭염 피해 농가에 대한 지원과 작황 부진에 따른 농산물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한 수급 대책을 추진하고 있고, 더운 낮 시간대 공공·관급 공사의 작업을 중단하고 폭염 기간인 7월과 8월 두 달간 전기요금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했다.

이번 폭염은 한반도를 포함한 북반구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기상관측 이후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했고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도 30도가 넘는 고온이 지속되고 있다. 지구촌 폭염의 주된 원인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후변화 대책의 실패에 기인한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선진국 주도로 1997년 일본 교토에서 기후변화협약(교토의정서)을 마련했으나 지난 십수 년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지구 온난화에 대한 책임공방으로 실효성 있는 추진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2015년 파리에서 개도국과 선진국이 모두 참여해 신기후변화협약을 마련했으나 지난해 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미국이 탈퇴함으로써 범(汎)지구 차원의 기후변화 대응은 사실상 구심점을 잃고 유명무실하게 된 상황이다.

그 결과 얼마 전 미국 국립기상학회가 공개한 연례기후보고서에 의하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세계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45% 증가했다고 한다. 또 유엔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없을 경우 지구의 연평균 기온은 2081~2100년에 현재보다 2.6~4.8도 더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지구는 거의 재앙수준의 기상이변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는 폭염이나 혹한과 같은 기상이변을 상시적인 ‘뉴노멀(new normal)’로 받아들이는 전제하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현재 국회에서도 폭염과 관련한 다수의 의원 입법이 계류 중인데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를 국민의 삶과 건강을 위협하는 재난으로 인정하고 서민과 농어민, 취약한 사업장의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번 폭염에서 상대적 피해를 본 전통시장과 자영업자들의 매출 감소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전통시장 시설 현대화를 위한 지원 확대,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한 대책과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지역 단위 상품권을 개량해 전국적으로 사용 가능한 자영업자 전용 상품권을 중앙정부와 17개 광역자치단체가 협의해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