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 에르도안’이 곤경에 처해 있다. 지난 주부터 국제 금융시장이 터키를 응시하는 상황인데, 그의 대응 수단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 지난 10일에는 터키 돈 리라가 하루에 15%가량 급락했다. 미국 달러당 리라 환율은 장중 한때 24%나 급등해 말 그대로 ‘검은 금요일’을 맞았다.
촉발 요인은 미국과의 갈등이다. 터키에서 활동해온 미국인 목사에 대한 사법 처리 문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 등에 2배 관세 부과’라는 보복조치를 취했다. 가뜩이나 미국의 이란제재 불참, 시리아 해법 이견 등으로 부딪쳐온 두 ‘동맹국’이 완전히 벌어진 것이다.
리라화의 폭락은 에르도안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라는 측면도 강하다. 에르도안은 금리문제에 대해서도 “최대한 낮게 유지해야 한다”며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부자를 더 부유하게 하는 착취 수단”이라고까지 언급했다. 7월 물가상승률이 15.85%(연율)로 14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는데도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에 관여하고 있으니 자본 이탈을 부채질한 격이다. “터키의 스트롱맨이 리라의 추락을 부추긴다”며 “러시아의 푸틴과 달리 에르도안은 기댈 ‘석유 달러’도 없지 않나”라고 꼬집은 파이낸셜타임스의 평가를 그와 측근들은 봤을까.
하지만 자수성가형 ‘21세기 술탄’의 대처역량도 만만찮다. 해양경찰의 아들로, 사탕과 생수를 팔며 이스탄불 빈민가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서민심리를 잡는 법을 알고 있다. 미국과의 갈등을 ‘국민적 투쟁’으로 몰고가는 것도 그렇고, “베개 밑 달러나 금을 리라로 바꾸라”는 촉구도 그렇다. 외적(外敵)만들기, 애국마케팅, 이슬람 신앙심 자극 같은 선동은 모두가 후진 정치의 소산일 것이다. 세계 최대 수준인 터키의 경상 적자, GDP의 70%로 추정되는 외화부채, 터키 기업들의 줄파산 가능성, 그에 따른 은행 충격을 국제 금융시장이 걱정하는 것과 딴판이다.
에르도안은 지난달 금융통화위원을 직접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재무장관에는 사위를 앉혔다. 그러면서 “경제전쟁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호언했다. 에르도안이 중국까지 제압해 나가는 ‘신(新)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 평화질서)에 끝까지 맞설 수 있을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