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학 혁신, 학생정보 활용 규제부터 풀어야
미국에는 ‘가족의 교육권 및 프라이버시법(FERPA)’이란 법령이 있다. 부모와 학생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광범위한 권리를 보장해 주는 법령이지만, 그 핵심 내용은 교육기관이 학생 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명확하게 정의해 주는 데 있다. 교육 개선 목적, 교육기관의 감사 또는 평가 목적, 재정 지원 관련 목적 등이 포함된다. 교육을 더 잘하기 위한 목적에 대해서는 학생 정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법적 토대를 기반으로 개별 학생의 진학기록, 학업성취, 취업, 임금수준의 관계에 대한 전 생애주기 분석이 가능하고, 이와 같은 정보 공개와 분석을 통해 국가와 민간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뒷받침한다. 예를 들면 정부의 교육기관별 재정 지원 규모 결정에 대한 근거 자료로 사용이 가능하며, 개인의 경우 대학별·전공별 졸업생의 평균 소득을 기초로 한 30년간의 등록금 투자 대비 임금을 순수익으로 계산하고, 가장 투자 효과가 높은 대학 진학을 선택할 수도 있다.

비슷한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페이스케일에 따르면 졸업생의 임금수준을 고려한 최고의 투자 가치 대학은 스탠퍼드대이며, 2위는 캘리포니아의 소규모 사립대학인 하비머드대, 공동 3위는 캘리포니아공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5위는 프린스턴대, 6위는 뉴욕주 해양대, 7위는 육군사관학교, 8위는 다트머스대, 9위는 경영학과로 특화된 밥슨대, 10위는 해군사관학교다.

1~5위는 모두 1년 등록금이 5만달러에 달하는 사립대학이라는 점과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특화된 소규모 대학들이 10위 안에 들어 있는 점, 취업이 보장되는 해양대와 사관학교가 포함된 점, 평등성과 수월성이란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일반 주립대학이 10위권에 하나도 없는 점이 흥미롭다.

2018년 우리나라 예산 64조원이 교육 분야에 투입되고 있으며, 이 중 9조4000억원이 대학 교육에 투입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이 위기 상황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이란 책무가 주어져 있고,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정원 축소 및 등록금 동결 등 재정적인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교육부는 이런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학 기본역량 진단을 통해 옥석을 가리고, 일반 재정 지원을 통해 대학의 자율적인 교육 혁신을 지원할 계획으로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 잘 쓰기 경쟁, 진단 위원 앞에서 발표 잘하기 경쟁일 수밖에 없는 현행 대학 기본역량 진단이 객관성과 합리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개별 대학과 학과가 얼마나 잘 가르치는지 어떻게 평가했을까. 대학의 상품이라 할 수 있는 졸업생들에 대해서는 분석했을까. 더 나아가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들의 경우 대학·학과 결정은 어떤 기준으로 이뤄지는가. 지원하는 대학·학과의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얼마나 신뢰할 만한 정보를 갖고 있는가. 이런 불투명한 정보 환경에서 국가의 소중한 재원이 불합리하게 사용되는 것이고, 대학의 서열화 같은 병폐가 공고해지는 것이다.

대학 혁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교육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이에 기반한 대학들의 공정한 경쟁 여건 조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 관련 개인정보 활용 규제부터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FERPA와 같은 법령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