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지 제대로 묻지 않고 진행한 재판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판 ‘미란다 원칙’이다. 수사기관이 범죄 용의자를 체포할 때 진술거부권, 변호사선임권 등을 알려주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미란다 원칙처럼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김씨는 방송국 PD 등을 사칭해 방송 출연을 원하는 젊은 여성 피해자들을 만나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심을 맡은 서울북부지방법원은 김씨에게 국민참여재판 안내서 등을 송달하지 않고 징역 3년6개월과 신상정보공개 5년, 위치추적 전자장치 10년 부착 명령을 내렸다. 서울고법도 피의자의 국민참여재판 선택권을 문제 삼지 않았다.

대법원은 절차상 위법하다는 이유로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 실시 여부는 일차적으로 피고인 의사에 따라 결정되므로 그 의사를 서면 등 방법으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며 “법원이 의사 확인절차 없이 재판했다면 피고인의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한 것이므로 소송행위도 무효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법원은 국민참여재판 대상 사건의 피고인 또는 변호인에게 국민참여재판 안내서와 의사확인서를 송달해야 한다. 대상이 되는 사건은 합의부 관할 사건이다. 다만 신청받은 재판부가 검토 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2심은 김씨에게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 만약 김씨가 원하면 1심 재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