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선임·해임권까지 거머쥔 국민연금… "거대한 행동주의 펀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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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개입 문 연 국민연금
276개 상장사 초긴장
배당 적거나 지배구조 취약하다고 판단하면 '개입'
복지부 장관 "심각한 기업가치 훼손 때만 주주권 행사"
재계 "연금사회주의 신호탄… 경영 급속 위축 우려"
276개 상장사 초긴장
배당 적거나 지배구조 취약하다고 판단하면 '개입'
복지부 장관 "심각한 기업가치 훼손 때만 주주권 행사"
재계 "연금사회주의 신호탄… 경영 급속 위축 우려"
수백 개에 달하는 국내 상장사들이 한층 더 힘이 세진 국민연금 위세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30일 주주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 원칙) 도입을 의결하면서다.
국민연금은 주주대표소송, 중점관리기업 명단 공개에서부터 이사 선임 및 해임, 위임장 대결까지 다양한 주주권 행사 수단을 갖게 됐다. 국민연금이 배당을 적게 하거나 지배구조가 취약하다고 판단한 기업을 압박하면 경영활동이 위축되고 반기업정서가 더욱 확산될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특히 기금운용 의사결정 체계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아 자칫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민간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연금사회주의’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배구조 전반으로 영향력 확대
기금운용위가 이날 심의·의결한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방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내년부터 경영진의 횡령·배임, 사익 편취, 계열사 부당 지원, 과도한 임원 보수 등을 중점관리 사안에 포함시킨다. 그동안은 배당에 대해서만 중점 관리했지만 앞으로는 지배구조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한진그룹 오너 일가 갑질 사태’ 같은 사건이 벌어지면 국민연금은 경영진에 비공개대화를 요청한다. 그 후에도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듣지 못하거나 개선되지 않으면 공개서한을 발송하고 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하는 등 의결권 행사와 연계해 기업을 압박한다.
자본시장법이 정비된 뒤에는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도 적극 행사한다.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를 해임하거나 국민연금이 원하는 이사를 추천할 수 있다. 위임장 대결을 통해 주총에서 국민연금 의사를 관철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대한항공(지분율 12.45%)과 한진칼(11.81%)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 등 오너 일가를 이사에서 해임하는 안건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131조원의 주식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하나의 거대한 행동주의 펀드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행동주의 펀드란 투자 기업의 주가를 높이기 위해 배당 확대, 자사주 매각, 기업 인수합병(M&A), 경영진 교체 등을 요구하는 펀드를 말한다. 지난해 말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업은 276개, 10% 이상 보유한 기업도 96개에 달한다. ◆자의적 해석 통한 주주권 행사 우려
기금운용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업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된 경우에만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그러나 ‘심각한 주주가치 훼손’의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재벌개혁 등 정부가 원하는 정책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수단으로 국민연금의 주주권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계 관계자는 “바람직한 지배구조는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고 정답이 없다”며 “국민연금이 획일적으로 지배구조의 정답을 정해놓고 밀어붙이면 오히려 투자 기업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중점관리 사안에 포함시킨 사익 편취나 계열사 부당 지원 등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사항으로 주주가치와 무관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오히려 공정거래법상 사익 편취 관련 규제가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대기업 총수 일가가 보유한 시스템통합(SI), 물류, 부동산 관리, 광고 등 비핵심 계열사나 비상장사 지분을 팔라”고 발언하자 삼성그룹 계열 SI 회사인 삼성SDS 주가가 다음날(6월15일) 14% 하락했다. 삼성SDS 지분 5.17%를 보유한 국민연금도 이날 1280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독립적 의사결정 체계 구축 필요”
전문가들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이상 국민연금이 정치로부터 독립된 의사결정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장에서 물러나고,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지배구조를 갖추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국민연금이 정부나 정치권 등 외부적 요인에 좌우되지 않는 독립적 의사결정체계를 구축해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국민연금 기금운용 거버넌스도 독립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편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국민연금은 주주대표소송, 중점관리기업 명단 공개에서부터 이사 선임 및 해임, 위임장 대결까지 다양한 주주권 행사 수단을 갖게 됐다. 국민연금이 배당을 적게 하거나 지배구조가 취약하다고 판단한 기업을 압박하면 경영활동이 위축되고 반기업정서가 더욱 확산될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특히 기금운용 의사결정 체계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아 자칫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민간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연금사회주의’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배구조 전반으로 영향력 확대
기금운용위가 이날 심의·의결한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방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내년부터 경영진의 횡령·배임, 사익 편취, 계열사 부당 지원, 과도한 임원 보수 등을 중점관리 사안에 포함시킨다. 그동안은 배당에 대해서만 중점 관리했지만 앞으로는 지배구조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한진그룹 오너 일가 갑질 사태’ 같은 사건이 벌어지면 국민연금은 경영진에 비공개대화를 요청한다. 그 후에도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듣지 못하거나 개선되지 않으면 공개서한을 발송하고 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하는 등 의결권 행사와 연계해 기업을 압박한다.
자본시장법이 정비된 뒤에는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도 적극 행사한다.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를 해임하거나 국민연금이 원하는 이사를 추천할 수 있다. 위임장 대결을 통해 주총에서 국민연금 의사를 관철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대한항공(지분율 12.45%)과 한진칼(11.81%)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 등 오너 일가를 이사에서 해임하는 안건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131조원의 주식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하나의 거대한 행동주의 펀드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행동주의 펀드란 투자 기업의 주가를 높이기 위해 배당 확대, 자사주 매각, 기업 인수합병(M&A), 경영진 교체 등을 요구하는 펀드를 말한다. 지난해 말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업은 276개, 10% 이상 보유한 기업도 96개에 달한다. ◆자의적 해석 통한 주주권 행사 우려
기금운용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업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된 경우에만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그러나 ‘심각한 주주가치 훼손’의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재벌개혁 등 정부가 원하는 정책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수단으로 국민연금의 주주권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계 관계자는 “바람직한 지배구조는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고 정답이 없다”며 “국민연금이 획일적으로 지배구조의 정답을 정해놓고 밀어붙이면 오히려 투자 기업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중점관리 사안에 포함시킨 사익 편취나 계열사 부당 지원 등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사항으로 주주가치와 무관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오히려 공정거래법상 사익 편취 관련 규제가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대기업 총수 일가가 보유한 시스템통합(SI), 물류, 부동산 관리, 광고 등 비핵심 계열사나 비상장사 지분을 팔라”고 발언하자 삼성그룹 계열 SI 회사인 삼성SDS 주가가 다음날(6월15일) 14% 하락했다. 삼성SDS 지분 5.17%를 보유한 국민연금도 이날 1280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독립적 의사결정 체계 구축 필요”
전문가들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이상 국민연금이 정치로부터 독립된 의사결정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장에서 물러나고,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지배구조를 갖추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국민연금이 정부나 정치권 등 외부적 요인에 좌우되지 않는 독립적 의사결정체계를 구축해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국민연금 기금운용 거버넌스도 독립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편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