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전력수요가 정부의 올여름 예상치(8830만㎾)를 연일 뛰어넘고 있지만 적극적인 ‘수요감축’에 나서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요감축에는 개문냉방 단속이나 절전 캠페인 등이 있으나 가장 확실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건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수요감축 요청’(DR·급전지시)이다.

27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3일부터 전력수요가 매일 9000만㎾를 넘으면서 DR 발령 요건이 충족되고 있지만 한 번도 시행하지 않았다. DR은 전력거래소와 계약한 3500여 기업에 전기 사용을 자제하도록 요청하는 수요관리 제도다. 최대 전력수요가 8830만㎾를 초과하고 공급 예비력이 1000만㎾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면 발동할 수 있다. 각 기업에 하루 전 ‘발령 예고’한 뒤 당일 시행하는 게 원칙이다.

정부는 심지어 전력수요가 9300만㎾, 예비력이 630만㎾(예비율 6.8%)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고된 지난 25일에도 DR을 활용하지 않았다. 작년 여름과 겨울만 해도 전력 예비율이 10% 안팎으로 떨어지자 총 12번의 DR을 발동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DR 제도를 관리하는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DR 참여기업에 대한 의견수렴 결과 몇 가지 어려움을 호소했다”며 “다수 기업이 휴가철을 앞두고 조업 막바지에 있어 융통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DR 발동을 미루는 데는 이달 초부터 시행한 주 52시간 근무제가 주요 배경이란 해석이 나온다. 전력 피크시간인 오후 2~5시에 공장을 세워 전력 소모를 줄인 뒤 저녁 또는 심야시간에 재가동해야 하는데, 자칫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제조업체 근로자들이 낮시간 쉬더라도 ‘근로 대기시간’에 해당해서다. 저녁 또는 심야시간에 추가로 일하면 그대로 근무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DR 참여기업 중 철강·석유화학·반도체 등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곳이 많아 소속 근로자들의 특근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점도 부담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DR 발령을 수차례 해도 참여기업과 한국전력이 전기요금을 나누는 방식이어서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기존 입장이었다”며 “이달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DR 참여가 어렵다는 기업이 예상외로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