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카? 내 눈엔 골드카
직장인 권혁준 씨(38)의 차는 어딜 가나 시선 집중이다. ‘억’ 소리 나는 수입 스포츠카도,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고급 대형세단도 아니지만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말을 건넨다. 권씨의 차는 현대자동차가 1987년에 생산한 중형 세단 스텔라다. 유선형으로 잘 빠진 요즘 차들과는 달리 각이 잡힌 모습이 인상적이다. 도로 위를 다닌 지 30년이 넘었지만 관리를 잘해 아직도 현역으로 뛰는 데 무리가 없다. 권씨는 “멀쩡한 차도 금방 바꾸는 세태가 안타까워 올드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부품 한 개를 구하기 위해 부산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중고차 시장에 올드카 매물 30%↑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 리스토어 열풍이 불고 있다. 리스토어(restore)란 말 그대로 오래된 차를 복원해서 타는 일을 말한다. 리스토어를 마친 차량은 올드카나 복고차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주로 부품을 구하기 쉬운 현대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갤로퍼나 기아자동차의 경차 구형 프라이드가 복원 대상이다. 순정 부품을 구해 옛날 모습 그대로 복원해서 타거나 취향에 따라 부품을 갈아 끼워 개성을 살리기도 한다. 낡은 엔진과 부품을 떼어내고 신형 엔진을 장착해 다시 태어나는 차도 있다.

올드카? 내 눈엔 골드카
중고차 시장에는 연식이 오래된 매물의 등록이 늘어났다. 중고차 거래사이트 보배드림에는 1980년부터 1999년 사이에 생산된 차량 등록건수가 2015년 236대에서 지난해 306대로 29.6% 증가했다. 지난해 중고차 거래사이트 SK엔카닷컴에 올라온 구형 갤로퍼와 프라이드 차량은 500여 대에 달한다. 대부분 리스토어를 마쳐 다시 태어난 차량이거나 리스토어 용도로 올라온 구식 차량들이다. SK엔카닷컴 관계자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온라인 카페나 동호회를 통해 거래되는 매물까지 고려하면 리스토어 시장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5년 새 리스토어 전문 업체도 늘고 있다. 자동차 정비 관련 지식은 부족하지만 올드카의 감성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곳이다. 구형 차량을 사들여 정비를 마친 뒤 다시 판매하는 식이다. 차량의 기본 골격만 유지한 채 엔진부터 계기판까지 바꿔달아 완전히 새로운 차로 재탄생시켜 판매하는 곳도 있다. 수제자동차 제작사로 알려진 모헤닉이 대표적이다. 모헤닉은 전남 영암에 생산 공장을 짓고 갤로퍼를 기반으로 한 전기자동차도 선보일 계획이다. 올드카 마니아 정인영 씨(32)는 “사업자 등록을 하고 영업하는 리스토어 전문 업체만 10여 개 정도”라며 “리스토어 업무를 겸하는 카센터 숫자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올드카 마니아들의 ‘성지’ 현대모비스

연식이 오래된 차를 정비해 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부품 수급이다. 지프의 1997년식 SUV 랭글러를 몰고 있는 직장인 류승환 씨(40)는 주로 온라인 경매사이트 이베이를 이용한다. 사이트에 부품의 일련번호를 검색해 필요한 부품을 찾아 사들인다. 올드카 마니아들에게는 폐차장을 뒤지는 것도 흔한 일이다. 류씨는 “희귀한 부품은 부르는 게 값”이라며 “폐차장을 뒤져 필요한 부품을 싼 값에 살 때도 있지만 원래 가격의 열 배 가까운 돈을 주고 경매로 부품을 낙찰 받을 때도 있다”고 했다.

현대모비스는 부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올드카 마니아들에게 ‘성지’ 같은 곳이다. 현대모비스는 홈페이지를 통해 부품정보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부품 이미지와 가격, 판매처 등을 안내한다. 현대모비스가 공급하고 있는 부품 종류는 198만 개에 달한다. 소비자는 홈페이지에 차대번호를 등록하면 해당 차량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을 확인할 수 있다. 일련번호를 조회해 필요한 부품만 찾을 수도 있다.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종합검사도 올드카 마니아들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관문이다. 노후차이다 보니 배기가스 허용 기준을 초과하거나 각종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해 부적합 판정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웃돈을 주고 통과가 잘 되는 검사 대행업체에 맡기는 이들도 있다. 권씨는 “연식이 오래된 올드카는 대부분 세컨드카로 활용해 주행거리가 짧다”며 “일반 차량과 비교해도 배기가스 배출이 많지 않다”고 했다. 자동차산업 선진국인 독일에서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올드카에 ‘H번호판’을 부여한다. 이 번호판을 단 차량은 자동차세와 보험료를 할인받고 환경 규제에서도 일정 부분 혜택을 받는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