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13일 오차드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싱가포르 렉처’에서 연설을 마치고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13일 오차드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싱가포르 렉처’에서 연설을 마치고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한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리게 될 것”이라며 “남북한은 경제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한 문 대통령은 이날 오차드호텔에서 열린 ‘싱가포르 렉처’ 연설에서 비핵화 이후 청사진을 이렇게 제시했다.

◆文, 국제사회 심판론 거론

문 대통령은 “한국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간 구축돼 있는 다양한 협력과 교류 증진의 틀 안으로 북한을 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세안이 운영 중인 여러 회의체에 북한을 참여시키고, 북한과의 양자 교류 협력이 강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가 평화를 이루면 싱가포르·아세안과 함께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는 지역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최근 미·북 간 실무협상이 난항을 겪는 데 대해 “실무협상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결국에는 (미·북) 정상들의 약속을 지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에 국제사회 앞에서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약속 이행을 강력히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그동안 미·북 협상과 관련해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편 것과는 결이 다르다며 미국과 북한 사이 실무협상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진 않을 것”이라며 “실무협상 과정에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논쟁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 심판론’을 거론하며 두 나라를 압박한 것이지만, 미·북 사이 중재자로서의 역할이 수월치 않은 답답함도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미·북 양측 모두에 책임있는 약속 이행을 강조하면서 북한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재차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지킨다면 북한을 번영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며, 북한이 비핵화 이행 방안을 더 구체화하고 한국과 미국은 이에 상응하는 포괄적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한다면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北, 아세안 회의체 참여해야”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이후 남북 경제공동체 구상을 다시 한번 언급하면서 아세안의 역할도 기대했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은 2000년 이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통해 북한과 국제사회 간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며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나가면 아세안이 운영 중인 여러 회의체에 북한을 참여시키고, 북한과의 양자 교류 협력이 강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하고 대북 제재가 해제되면 북한과 아세안 간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냈다.

문 대통령은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수준을 높이겠다는 뜻을 밝히는 등 이번 5박6일간 인도·싱가포르 순방에서 강조한 ‘신(新)남방정책’을 통해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신남방정책은 문 대통령의 경제 외교 정책으로 아세안 국가와의 경제협력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싱가포르 렉처에 이어 동포간담회를 한 뒤 귀국길에 올랐다.

싱가포르=손성태 기자/조미현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