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처음 패소한 대우일렉트로닉스(현 대우전자) 매각 건에 대해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란 다야니가(家)의 손을 들어준 유엔 중재판정부가 한국 정부의 주장에 대한 판단을 누락하는 등 취소 사유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원회는 외교부, 법무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지난 3일 영국 고등법원에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고 4일 발표했다. 앞서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6일 다야니 측이 2015년 제기한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 보증금과 이자 등 935억원 반환 청구 중재 신청을 검토한 결과 한국 정부가 약 73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ISD에 한국 정부 패소 결정을 내린 첫 사례다. 한국 정부가 한·이란 투자보장협정(BIT)상 공정·공평한 대우 원칙 등을 위반했다는 게 중재판정부의 설명이다.

다야니 측은 자신들이 대주주로 있는 가전기업인 엔텍합이 2010~2012년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려다 무산된 것과 관련해 2015년 ISD를 제기했다. 엔텍합은 2010년 4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진행한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같은 해 11월 보증금 578억원을 내고 본계약을 맺었다. 캠코는 이듬해인 2011년 5월 매매계약을 해지했다. 엔텍합이 인수대금 인하를 요구하며 대금 지급기일을 넘겼다는 게 캠코의 판단이었다.

금융위는 영국 중재법상 당시 계약 당사자인 캠코는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어 이 사건이 ISD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 캠코의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된다고 볼 수도 없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취소 소송에서 국가기관이 아닌 캠코는 ISD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부각해 중재판정부에 실질적 관할권이 없다고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또 다야니가 싱가포르 법인에 투자하고 이 법인이 인수합병(M&A) 협상을 했기 때문에 다야니는 ISD를 제기할 당사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내 법조계는 정부의 취소 신청이 영국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단심제로 운영되는 ISD 중재는 사실상 대법원 판결과 마찬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