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지하철, 삶의 길을 열다
무더위를 피해 여행 가기 좋은 계절이다. 교통체증을 피해 지하철에 오른 이들이 향하는 곳은 국물 진한 바지락 칼국수를 먹고 서해의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오이도, 북한강을 끼고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달릴 수 있는 가평 등 각양각색이다.

지금은 지하철이 서울을 넘어 강원, 충청까지 여러 시·도를 넘나들며 운행하지만 1974년 서울역~청량리역 구간을 오가는 종로선이 개통하기 전만 해도 사람들의 이동은 제한적이었다. 경기 고양군 원당면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서대문구 진관내동까지 갈라치면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지금은 지하철 3호선을 타면 10분 남짓한 거리다.

노선이 연장되거나 신설될 때마다 이동이 편리해지면서 생활의 지도도 급속히 바뀌었다. 종로선이 개통됐을 때는 종로서적이 젊은이들의 명소로 떠올랐다. 필자도 대학 시절 아내와 데이트를 할 때면 종로서적 앞을 자주 들렀다. 하루평균 서점 이용객은 1만5000명이지만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몰려드는 사람은 5만여 명 정도였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명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1982년 강남역이 생기고, 1984년 지하철 2호선 전 구간이 개통하면서 강남역 사거리 타워레코드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길 따라 돈이 흐른다’는 말이 있듯 부동산 시장의 큰 흐름에서도 지하철을 빼놓을 수 없다. 4호선 개통을 앞두고 동북부 지역 중심 상권으로 부상한 수유리(지금의 수유역 인근)는 지하철 공사가 시작되기 전보다 땅값이 두 배 이상 뛰어 당시 서울에서 가장 비싸다는 강남지역과 우열을 다툴 정도였다. 종로선의 시운전이 끝나자마자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종로변의 도매상들은 청계천, 서울 변두리 지역 등으로 밀려나야 했다니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젠트리피케이션이 새삼스럽지 않다.

서울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으로 촘촘하게 뻗어나간 노선도를 보고 있으면 지하철의 확장성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지하철 노선과 역이 생길 때마다 그곳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모여드는 새로운 길이 됐다. 길은 문명의 발전과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역사는 곧 길의 역사이고 인간의 문명은 곧 길의 문명이다. 길을 연결한다는 것은 문명과 문명, 사회와 사회의 연결을 뜻한다.

부천시 소사역부터 안산시 원시역까지 총 23.3㎞ 구간을 달리는 소사~원시선이 지난달 개통했다. 새로운 길 위에서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삶의 여정에 이정표가 될지 자못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