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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칼럼] '청년 일자리'만큼 절박한 현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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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은 대기업으로 몰리는데
    대기업은 노동·출자 규제에 '꽁꽁'

    더 이상 기업가 투혼 꺾지 말고
    출자규제 완화, 고용특례 입법 등
    청년 일자리 해결책 내놓아야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
    [다산 칼럼] '청년 일자리'만큼 절박한 현안은 없다
    눈 높은 아버지를 둔 규수가 혼기를 놓쳤다. 일찍 결혼해 아이를 많이 낳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신랑감마다 퇴짜를 놓았다. 참다못한 규수가 꾀를 냈다. 도시락을 준비해 소풍을 권하면서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에서 드실 것을 당부했다. 아버지가 물 좋은 곳을 찾았더니 정자가 없고, 정자 근처에는 인파가 몰려 물이 혼탁했다. 도시락을 못 먹고 귀가하면서 딸의 속마음을 이해했고 적당한 짝을 골라 얼른 결혼시켰다.

    경제 운용의 목표는 다양하다. 공정하면서도 일자리가 풍족하면 최고다. 노동과 출자 규제는 공정경제에는 좋지만 기업의 고용 의욕을 저하시킨다. 북한보다 어려웠던 대한민국 경제를 끌어올린 동력은 기업가의 투혼이다. 정주영 현대 창업주는 새벽부터 현장을 뛰었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생활필수품에 집중해 기업을 일궜다. 성장 과정에서 정경유착과 대기업 집중 및 관치금융 병폐도 싹텄고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확산됐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노동 및 소액주주 운동이 본격화됐다. 노조에 끌려다니던 기아와 정치권에 뇌물을 뿌리던 한보가 쓰러졌다. 심각한 금융 부실이 노출되자 외국 자본이 이탈했고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구걸하는 처지가 됐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부채비율 200%’를 비롯한 대기업 규제를 강행했다. 부채비율은 부채총액을 자본총액으로 나눈 것이기 때문에 자본총액이 증가하면 낮아지기 마련이다. 계열사가 많은 그룹은 순환출자로 부채총액은 그대로 두고 부채비율을 낮췄고 계열사가 없는 대기업은 쓰러지거나 쪼그라들었다.

    김대중 정부는 배당 세금혜택을 매개로 지주회사 체제를 유도했다. LG가 GS 및 LS와의 분할 과정에서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공정거래법의 지주회사 규제는 금융업 겸업 금지와 손자회사가 국내 계열사에 출자하려면 100% 지분이 요구되는 등 엄격하다. 금융업 비중이 높은 삼성그룹과 국제 경쟁이 치열해 대규모 투자 소요가 수시로 돌출하는 자동차 중심의 현대자동차그룹은 수용이 어렵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에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는 인정하되 합병을 통한 강화는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그러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거래법과는 별개로 기존 순환출자 해소를 압박한다. 현대차그룹이 공정위와 협의를 거쳐 순환출자 해소 방안을 마련해 주주총회를 소집했지만 해외 펀드가 조직적으로 반발해 무산됐다.

    ‘아니면 말고’식 규제의 전형은 김대중 정부의 ‘결합재무제표’다. 모든 계열사 재무제표를 통합시키라는 요구인데 세계 어디에도 전례가 없다. 당시 여당 대표는 “결합재무제표만 작성하면 재벌은 자동적으로 해체될 것”이라는 코미디 같은 주장을 내놨다. 그러나 약효는 전혀 없었고 2012년에 조용히 폐지됐다. 전문가도 갑론을박(甲論乙駁)하는 고난도의 회계 판단 문제를 끄집어내 2년 넘도록 들볶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는 ‘1998년 결합재무제표’의 데자뷔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고용대란이 악화됐다는 원성이 높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 52시간 근무제의 연착륙 방향을 내놨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 지원 확대를 강조한다. 청년 일자리에 대해서는 근본적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청년은 대기업으로 몰리지만 대기업은 노동과 출자 규제에 끌려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임금은 높아지는데 창업이 활발할 리도 없다. 창업자금 공급체계를 혁신하고 실패에 부딪히면 수습과 재기를 도와야 한다. 이월결손금을 인수하는 기업이 법인세에서 공제받을 수 있도록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성공한 기업가를 높이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확산돼야 한다.

    생애 첫 직장을 제때 잡지 못하면 결혼과 출산을 비롯해 삶 전체가 뒤틀린다. 출산율 급락으로 국가 존립도 위태롭다. 대기업 출자규제를 국회의 법률개정도 없이 실업대란 와중에 밀어붙이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기존 취업자의 기득권은 보호하되 신규 채용 시 일부 근로조건은 당사자 합의로 정할 수 있는 고용특례 입법이 시급하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면서 초조한 나날을 보내는 미취업 청년 문제가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leemm@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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