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31일 발표한 경영쇄신안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적을 받았던 ‘일감 몰아주기 해소’와 함께 ‘계열사 책임경영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 정책에 적극 부응하면서 기업 체질 개선으로 그룹 도약의 계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룹 중심 경영의 상징이었던 경영기획실을 해체하기로 함에 따라 각 계열사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책임경영 체제로 전환하는 데 속도가 붙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모든 기업(계열사)에서 정도경영을 근간으로 삼아달라”고 강조했다.
한화그룹, 이사회 중심 경영 강화… '일감 몰아주기 논란'도 해소
◆사외이사 역할 확대

한화그룹은 우선 사외이사의 역할 확대를 명시했다. 그룹 출신 사외이사를 임명하는 대신 개방형 사외이사 추천 제도를 도입해 사외이사 영입 경로를 다양화하기로 했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심의하는 내부거래위원회는 사외이사로만 구성해 공정성을 강화할 방침이다. 새로 생기는 주주권익보호 담당 사외이사는 이사회에서 주주 관점에서 의견을 제시하며 주주와 기업의 소통 창구 역할을 맡게 된다.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은 계열사 책임 경영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해체하기로 했다. 경영기획실은 그룹 전반의 업무를 총괄 담당하는 조직으로, 김 회장 부재 당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지만 법적 실체가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경영기획실이 사라지면 (주)한화가 그룹 대표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룹의 소통 확대와 준법경영을 위해 커뮤니케이션위원회와 컴플라이언스위원회가 각각 신설된다. 컴플라이언스위원회 위원장은 이홍훈 전 대법관이 맡을 예정이다. 한화그룹은 조직 개편을 통해 각 계열사들이 더 합리적인 경영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각 계열사 이사회의 책임·독립 경영도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룹 내 소통 확대와 준법경영

한화S&C는 지난해 10월 지배회사(에이치솔루션)와 사업회사로의 물적분할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에이치솔루션은 지분 44.6%를 스틱인베스트먼트 등 재무적투자자들에게 2500억원에 매각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판단 유보 결정을 내렸다. 물적분할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총수 일가가 한화S&C를 간접 지배하고 있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0일 10대 그룹 전문경영인들과 만나 “일감 몰아주기는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몰아주고 편법승계와 경제력 집중을 야기하는 잘못된 행위”라고 말했다. 김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가진 에이치솔루션은 한화S&C 지분 55.37%를 보유하고 있다.

오는 8월 출범하는 합병법인(한화S&C+한화시스템)은 에이치솔루션이 약 26.1%의 지분을 갖는다. 합병이 완료되면 스틱컨소시엄에 11.6%를 추가 매각한다. 이렇게 되면 에이치솔루션의 지분율은 14.5%로 내려간다. 공정거래법상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이 20%를 넘는 비상장사는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을 넘거나 연 매출의 12% 이상이면 공정위의 규제 대상이 된다. 이번 조치로 합병 회사에 대한 에이치솔루션의 지분율이 10%대로 떨어져 공정위 요구를 충족한다는 게 한화그룹 측 설명이다.

에이치솔루션은 14.5%의 지분도 모두 처분할 계획이다. 그룹 관계자는 “합병은 지난해 이뤄진 물적분할의 마무리 성격이 강하다”며 “총수 일가가 내부거래로 부당이익을 쌓는다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이번 발표의 의미를 ‘일감 몰아주기 해소’로 한정했지만 향후 한화시스템 상장 등에 따라 김 회장의 후계 작업이 공식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