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4일 밤 외교·안보라인을 긴급 소집해 미·북 정상회담 취소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은 작년 11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  /한경DB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밤 외교·안보라인을 긴급 소집해 미·북 정상회담 취소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은 작년 11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 /한경D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미·북 정상회담을 돌연 취소할 뜻을 밝히자 청와대는 충격에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돌아온 지 하루도 안돼 ‘비보(悲報)’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진정성을 보증하며 끝까지 미·북 정상회담이 열려야 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온 문 대통령의 노력이 사실상 수포에 돌아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북 정상회담 취소가 전해진 24일 밤 11시30분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을 청와대 관저로 긴급 소집했다.

청와대는 이날 밤 12시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미국 의도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고 시도 중”이라고 했다. 또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심’을 사전에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한·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를 논의했다. 청와대는 “한·미 정상 간 이뤄진 솔직한 의견 교환을 바탕으로 6월12일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정부 차원의 다각적인 지원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이뤄진 북한 측의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에 대해서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첫 번째 조치”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 22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 때문에 미·북 정상회담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게 있는데, 저는 예정대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제 역할은 미국과 북한 사이의 중재를 하는 입장이라기보다 회담 성공을 위해 미국과 함께 긴밀하게 공조하고 협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북한 의지를 의심할 필요가 없다”며 김정은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회담 전후로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매우 낙관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미·북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99.9%”라고 했다. 회담이 끝난 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미·북 회담은 성사될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결이 다른 이야기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이 안 열릴 수도 있고, 안 열려도 괜찮다”며 김정은과의 만남을 연기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연기 발언에 무게를 뒀다. WP는 “스케줄에 얽매여 성과 없는 회담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남북한 정상회담에 이어 미·북 정상회담, 남·북·미 정상회담까지 속도감 있게 추진해 온 문 대통령의 구상이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김정은과의 만남 가능성을 열어 놨지만, 문 대통령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 취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문 대통령을 배제하면서 북한과 미국 간 중재자를 자처한 것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걸 여실히 증명한 셈이기 때문이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