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문제로 17일 경영 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1995년 2월22일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재임기간 23년 동안 아시아 변방의 가전업체였던 LG그룹을 글로벌 일류 정보기술(IT)그룹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4년 카드 사태와 같은 위기를 넘기면서도 사업을 다각화하고 그룹 덩치를 키웠다. 취임 직전인 1994년 30조원대에 불과하던 그룹 매출은 2017년 160조원대로 23년 만에 5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같은 기간 해외 매출도 약 10조원에서 110조원으로 11배로 증가했다.

‘정도 경영’도 정착시켰다는 평가다. 2000년 들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GS, LS, LIG, LF 등 대주주 일가들이 차례로 계열분리됐지만 별다른 잡음이나 분쟁이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이나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들과 거리를 두고 사업에만 집중했다.

경제계 인사들은 “한 번 세운 목표는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부단하게 추진하면서도 권한을 아랫사람들에게 과감하게 위임하는 경영자”라고 구 회장을 평가한다. 디스플레이사업, 2차전지, 통신사업 등이 구 회장이 직접 키워낸 대표적인 사업으로 꼽힌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의 ‘빅딜’ 논의 과정에 출범한 LG LCD(현 LG디스플레이)는 1995년 15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지난해 28조원으로 급증했다. 1995년 이후 지난해까지 22년간 투자된 자금은 40조원이 넘는다.

LG화학의 2차전지사업도 1992년 구 회장(당시 부회장)이 연구개발을 처음으로 제안한 뒤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세계 1위 경쟁력을 갖췄다. 2005년 2차전지사업에서 2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을 당시 “우리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과가 나올 것”이라며 사업을 계속 밀어붙인 사례가 그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는 설명이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