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Biz] "갑질 리스크 없애드립니다"… 로펌들 새 먹거리 '준법경영'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논란으로 세간의 눈총을 받고 있는 한진그룹이 최근 준법위원회를 신설했다. 회사의 준법경영(컴플라이언스)과 관련한 시스템을 총괄 지휘하는 조직이다. 준법위원장은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사법연수원 10기)이 맡았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공익활동 조직인 사회공헌위원회 초대 위원장 출신으로 위기에 빠진 ‘한진호(號)’의 구원투수가 됐다.

국내 기업들이 준법경영과 관련한 조직과 인력을 확보하는 데 부쩍 애를 쓰고 있다. 컴플라언스와 관련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면서다. 준법경영 강화 움직임에 로펌들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기업들이 중량감 있는 법조인 영입에 공을 들이며 스스로 조직을 정비해보겠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로펌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준법경영 자문 시장 빠르게 성장

국민들의 준법경영 눈높이가 올라가면서 회사 내부에 컴플라이언스 전담 조직을 구축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한진그룹뿐만 아니라 롯데그룹도 지난해 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경영권 분쟁과 함께 국정농단 연루의혹을 받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준법경영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컴플라이언스위원장과 부사장에 민형기 전 헌법재판관(6기)과 이태섭 전 부장판사(16기)를 선임했다. CJ오쇼핑과 CJ E&M의 합병을 추진하는 CJ그룹은 계열사별로 컴플라이언스 전문변호사를 두는 방식을 택했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예전에 준법경영은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등 5대 그룹을 중심으로만 관심을 기울여왔는데 요즘에는 재계 전반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라며 “컴플라이언스와 관련한 자문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로펌들은 전문가 영입과 조직 확충 등을 서두르면서 관련 자문 업무를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리스크 관리를 넘어 미래 주력사업을 포함한 기업별 맞춤형 종합 컨설팅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로펌 관계자는 “해외사업 비중이 높은 일부 기업은 미국 등 주요국의 개인정보 보호, 부패방지법 등을 주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법을 위반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규제감독기관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절차적 규정도 많아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물샐틈’ 없이 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Law & Biz] "갑질 리스크 없애드립니다"… 로펌들 새 먹거리 '준법경영'
◆전문역량 제고로 차별화에 주력

로펌들은 저마다 장기를 부각하고 있다. 김앤장은 디지털 기기에서 쓸모 있는 자료를 찾아내는 디지털 포렌식 역량과 이 가운데 회계자료 분석을 의미하는 포렌식 회계 역량에서 최고라고 자평하고 있다. 광장은 고객사가 기업형사, 금융규제, 노동, 환경 등 이슈별로 사안을 맡길 수 있도록 팀을 세분화했다. 태평양은 해외부패방지법(FCPA) 등 국내외 반부패 관련 법령에 대한 자문, 외국 기업의 국내 계열회사에 대한 내부통제시스템 분석에 주력 중이다.

세종은 의료제약 기업의 리베이트, 자금세탁, 증권 관련 불공정거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사건 등을 비롯한 각종 화이트칼라 범죄 사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건주 전 대전지방검찰청장(17기) 등 고위급 검찰 출신을 꾸준히 영입해온 결과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우는 2005년 국내 로펌 최초로 법률 리스크 관리체계인 CRM(compliance risk management)을 도입했다. 안상현 화우 변호사(30기)는 “방위산업, 헬스케어, 자동차 관련 산업 및 프랜차이즈업종에 대한 부패방지 관련 자문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율촌은 법제처장을 지낸 이재원 변호사(14기)를 중심으로 컴플라이언스팀과 내부조사팀으로 조직을 이원화했다.

로펌들은 전관 출신으로 기업에서 컴플라이언스 조직 초석을 다졌던 인사들을 영입하면서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 이건종 화우 변호사(15기·전 현대중공업 준법경영실장), 이준승 광장 변호사(20기·전 STX 부사장), 조규석 율촌 변호사(26기·전 (주)두산 법무실 상무), 유성훈 세종 변호사(26기·전 동양그룹 법무실장) 등이 대표적이다.

◆“컴플라이언스 시장 갈수록 커진다”

로펌업계는 기업들의 컴플라이언스 강화는 새 정부의 움직임과도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정부는 지난달 18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열어 ‘5개년 반부패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향후 반부패정책이 공공부문을 넘어 민간부문으로 확산되도록 할 예정이다. 2012년 도입 이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받는 준법지원인 제도가 안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예고하고 있어 주목된다. 의무도입을 강화하겠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로펌들의 ‘먹거리’가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6년 적용 대상 상장사(자산 규모 5000억원 이상) 311개사 중 127개사가 준법지원인을 선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준법경영을 확대하기 위한 ‘당근’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곽관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갖춰놓고 임원진이 이를 지키려고 노력했다면 문제가 생기더라도 책임과 처벌을 완화해준다”며 “한국에서도 ‘야단’만 치기보다는 적절한 인센티브로 준법경영을 강화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