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 휘말린 정부가 엘리엇이 내놓은 무리한 수준의 손해배상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를 통한 중재재판 절차를 밟기로 했다.

법무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8일 국내 대형 로펌 일곱 곳에 엘리엇 ISD와 관련한 제안요청서를 보냈고 제출 기한은 오는 16일”이라고 11일 밝혔다. 제안요청서에서 법무부는 △승소전략 △비용 효율성 제고 방안 △협력 가능한 해외 로펌 △이해 상충 이슈 등에 대해 회신해줄 것을 로펌들에 요청했다.

정부가 로펌 선정 과정에 들어간 것은 엘리엇과의 ISD 전면전을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중재의향서 접수 후 90일이 지나야 ISD를 제기할 수 있고, 그 사이 엘리엇과 협상이 가능하지만 법무부는 중재의향서를 검토한 뒤 ‘정면돌파’ 카드를 택했다.

법무부는 또 엘리엇이 지난달 13일 제출한 4쪽짜리 중재의향서 원본을 이날 공개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약상 공개 의무에 따른 조치다. 중재의향서에서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건에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함으로써 삼성물산 투자자인 자신들이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피해액은 6억7000만달러(약 7100억원)로 산정했다. 이는 일반적인 예상을 훨씬 웃도는 금액으로 평가받는다.

정부가 공개한 엘리엇의 중재의향서 영문 원본도 정부의 정면돌파 카드 선택이 불가피했음을 잘 보여준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지난달 13일 4쪽짜리 중재의향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엘리엇은 중재의향서에서 한국 정부로 인해 자신들이 6억7000만달러(약 710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배상청구액이다.

엘리엇은 중재의향서에서 피해액 산정의 구체적 근거를 밝히지는 않았다. 한 국제중재 변호사는 “엘리엇이 한국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청구액을 내놓고 국내 재판 결과를 걸고넘어지는 상황이라 정부로서도 신속한 정면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중재 의사를 제기한 당사자와의 협의가 의무”라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가 광장·김앤장·세종·율촌·지평·태평양·화우 등 7개 대형로펌에 제안서 제출을 요청하며 마감시한을 불과 8일 후인 16일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로 풀이된다. 지금까지는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제안서 제출에 한 달 내외 시간을 줬다.

엘리엇은 중재의향서에서 예상대로 우리 측의 가장 약한 고리인 국정농단 사건 수사와 재판을 언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직권을 남용해 국민연금이 절차를 뒤엎었고, 이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로펌들은 비상이다. 짧은 준비기간도 그렇지만 국내 재판 결과를 들이민 만큼 상대 전략 마련이 쉽지 않아서다. 한 대형로펌 국제중재 변호사는 “법무부가 1주일 안에 제안서 제출을 요청하면서 비상 상황에 들어갔다”며 “FTA 규정 위반 부분이나 손해액 산정 이슈에서 어떤 변론을 펼 수 있을지 연구 중”이라고 전했다. 합병건을 적폐로 몰아붙인 정부가 스스로의 모순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