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베이징大 총장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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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국의 50대 후반~60대는 청소년기에 유별나게 힘든 경험을 한 세대다. 마오쩌둥 말기 문화혁명(1966~1976)은 한창 공부할 때 이들에게서 학습권을 빼앗았다. 예민한 시기의 극좌 사회주의운동 체험은 이 세대에 집단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진단도 있다. “지식인도 노동을 체험하라”는 마오의 지시는 학생들까지 하방(下放)을 강제했다. 시진핑 주석도 그때 산시성 오지에서 7년간 하방생활을 했다.
초·중·고 시절 학교 대신 집단농장에서 돼지를 키우고 작물을 길렀던 ‘하방세대’가 현대 중국을 이끌고 있다. 개방·개혁으로 성취를 이룬 세대지만 지적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번체자로 한자를 써내려가는 한국인에게 놀라움을 감추지 않는 이 세대 지식인들이 많다. 중국 식자층과의 대화에서는 중국의 고사성어를 웬만큼만 필담에 담아도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현대 중국어인 간체자만 아는 중국인에게 원문 그대로의 고전은 한자를 안 배운 한국인 앞의 사서삼경과 다를 바가 없다. 교실까지 정치화했던 한 시대의 광기는 특정 세대의 지적 성장을 가로막아 버렸다.
베이징대 린젠화 총장(63·화학박사)이 며칠 전 개교 기념식에서 ‘鴻鵠’(홍곡: 큰 기러기와 고니)을 잘못 읽어 국제 뉴스가 됐다. ‘홍곡의 뜻을 세우라’(立鴻鵠志)는 대목이었는데, 사기(史記)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었다. ‘제비나 참새가 어찌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겠나’(燕雀安知鴻鵠之志)는 중국 중학 교과서에도 있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도 중학생 정도면 배운다.
이것 말고도 잘못 읽은 게 더 있어 ‘글자도 모르는 총장’이라는 조롱까지 나왔다. 놀라운 것은 린 총장의 솔직한 사과다. “초·중학생 시절 문화대혁명 때 교육이 거의 정체됐고, 몇 년간은 교과서도 없었다. 솔직히 이 말의 발음을 몰랐다.” 베이징대 게시판에 올린 공개사과문이다. “교수는 어디서도 모른다는 말은 하기 어려운데, 서울대 교수는 특히 더 그럴 것”이라는 교수들의 ‘직업 고민’이 떠오른다.
한자 교육으로 치면 이랬다저랬다 해 온 우리도 할 말이 없다. 한문 과목 폐지는 물론, 정부가 아예 학과 공부를 소홀히 하도록 유도했던 ‘이해찬 세대’도 있다. 한자를 모르면 한국과 동양의 고전세계로 통하는 기본 통로가 막힌다.
한자만도 아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더니, 이번에는 수학에서 기하학을 빼겠다고 해 이공계가 충격에 빠졌다. 인공지능(AI)의 딥러닝도, 드론도 기하 없이는 안 된다. 다른 한쪽에서는 헌법이 수호해온 ‘자유민주주의’ 대신 지향점도 불명확한 ‘민주주의’를 교과서에 담겠다고 한다. ‘교육의 정치화’인가. 모든 게 정치로 수렴되면, 그런 사회는 어디로 갈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초·중·고 시절 학교 대신 집단농장에서 돼지를 키우고 작물을 길렀던 ‘하방세대’가 현대 중국을 이끌고 있다. 개방·개혁으로 성취를 이룬 세대지만 지적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번체자로 한자를 써내려가는 한국인에게 놀라움을 감추지 않는 이 세대 지식인들이 많다. 중국 식자층과의 대화에서는 중국의 고사성어를 웬만큼만 필담에 담아도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현대 중국어인 간체자만 아는 중국인에게 원문 그대로의 고전은 한자를 안 배운 한국인 앞의 사서삼경과 다를 바가 없다. 교실까지 정치화했던 한 시대의 광기는 특정 세대의 지적 성장을 가로막아 버렸다.
베이징대 린젠화 총장(63·화학박사)이 며칠 전 개교 기념식에서 ‘鴻鵠’(홍곡: 큰 기러기와 고니)을 잘못 읽어 국제 뉴스가 됐다. ‘홍곡의 뜻을 세우라’(立鴻鵠志)는 대목이었는데, 사기(史記)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었다. ‘제비나 참새가 어찌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겠나’(燕雀安知鴻鵠之志)는 중국 중학 교과서에도 있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도 중학생 정도면 배운다.
이것 말고도 잘못 읽은 게 더 있어 ‘글자도 모르는 총장’이라는 조롱까지 나왔다. 놀라운 것은 린 총장의 솔직한 사과다. “초·중학생 시절 문화대혁명 때 교육이 거의 정체됐고, 몇 년간은 교과서도 없었다. 솔직히 이 말의 발음을 몰랐다.” 베이징대 게시판에 올린 공개사과문이다. “교수는 어디서도 모른다는 말은 하기 어려운데, 서울대 교수는 특히 더 그럴 것”이라는 교수들의 ‘직업 고민’이 떠오른다.
한자 교육으로 치면 이랬다저랬다 해 온 우리도 할 말이 없다. 한문 과목 폐지는 물론, 정부가 아예 학과 공부를 소홀히 하도록 유도했던 ‘이해찬 세대’도 있다. 한자를 모르면 한국과 동양의 고전세계로 통하는 기본 통로가 막힌다.
한자만도 아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더니, 이번에는 수학에서 기하학을 빼겠다고 해 이공계가 충격에 빠졌다. 인공지능(AI)의 딥러닝도, 드론도 기하 없이는 안 된다. 다른 한쪽에서는 헌법이 수호해온 ‘자유민주주의’ 대신 지향점도 불명확한 ‘민주주의’를 교과서에 담겠다고 한다. ‘교육의 정치화’인가. 모든 게 정치로 수렴되면, 그런 사회는 어디로 갈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