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근로자의 날’ 기념 메시지를 통해 “노동 존중 사회를 위한 정부 노력은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년 전 ‘노동 존중’을 핵심 국정기조로 삼겠다고 약속했음을 상기시키며, “개헌 국민투표가 무산된 것은 아쉽지만 노동기본권 강화라는 개헌안 취지를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로 뒷받침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모든 성장은 노동자를 위한 성장이어야 한다”는 ‘노동관(觀)’도 재확인했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일련의 친(親)노동정책을 추진해 역대 어느 정권보다 노동계 지지가 단단하다. 게다가 대통령 개헌안에 담으려던 공무원 노동3권 보장, 단체행동권 강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등을 정책·제도화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노동계로선 나아지면 나아졌지 나빠질 게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일자리 없는 노동 존중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일자리 정부’가 먼저 챙겨야 할 것은 노동시장 바깥에서 배회하며 눈물짓고 있는 노동약자들이지, 공무원 노동3권 같은 것들이 아니다.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노동권 강화 정책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미국 일본에선 유례없는 일자리 풍년인데, 한국은 3월 실업자수가 125만 명에 이르고, 청년실업률은 11. 6%(체감실업률 24.0%)로 2년 만에 최고치다. 구조적 침체로 ‘고용 절벽’이 더욱 깊어지는 형국이다.

지난 1년간 밀어붙인 고용·노동정책마다 노동시장 진입장벽을 높이는 부작용을 낳은 데 대해 심각한 성찰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급등이 저임금·비숙련 인력의 고용감소를 초래했듯이, 근로시간의 인위적 단축은 노동약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줄 게 뻔하다. 반면에 득을 보는 것은 강력한 조직력을 갖춘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기득권 노조들이다. 심지어 공휴일에 근로자들이 쉬는 것조차 양극화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 근로자의 노동3권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처럼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한국만큼 노조의 파업권이 강력한 나라도 없다. 문 대통령도 언급했듯이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 양극화도 결국 핵심은 일자리 문제다. 사회 구성원 간의 양보와 타협만이 해법이다. 노동 존중이 ‘노동계 존중’이어선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