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자국 자동차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자동차의 배출가스 기준 등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미국 판매가 많은 한국과 일본산 자동차를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현대·기아자동차는 미국 시장에 판매하는 차량의 절반 이상을 한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어 미 정부 계획이 현실화하면 타격을 입게 된다.

트럼프, 車시장 장벽… 韓·日 자동차 겨냥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이 청정대기법 등을 활용해 해외에서 생산돼 수입되는 자동차에 엄격한 배기가스 배출기준을 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환경청(EPA)과 상무부 등에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자동차를 수입할 때 엄격한 배기가스 배출 테스트와 검사를 하라는 것으로, 이 같은 비관세 장벽은 미국에서 생산된 차량의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해 미국 판매량(128만 대)의 약 절반인 66만 대를 한국 공장에서 생산해 들여왔다. 나머지는 미국 앨라배마공장(현대차)과 조지아공장(기아차)에서 생산했다. 제너럴모터스가 한국GM에서 수입한 차량까지 더하면 미국에서 판매되는 한국 생산 차량은 82만 대에 달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표밭인 미국 중부지역의 자동차 기업과 근로자를 지원하기 위해 온갖 정책을 펼쳐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서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주력 판매 차종인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를 20년간 지금처럼 유지한다는 내용을 넣은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안전 기준만 충족하면 한국에 수출할 수 있는 차량 쿼터(수입 할당량)를 2만5000대에서 5만 대로 확대할 것을 요구해 관철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외국산 자동차에 대해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중적 태도라는 비판과 함께 자동차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 권익을 희생시킨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엄격한 수입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비용 중 일부는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이는 미국이 오랫동안 비난해 온 외국의 보호주의 정책과 똑같다”고 꼬집었다.

미국이 수입차에 대한 환경 규제를 내놓으려는 구상에는 독일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배출 조작 사건이 있다고 WSJ는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입차에 더 많은 비용이 드는 환경 기술을 요구하거나, 제조사나 수입업자에게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장애물을 만들 계획으로 전해졌다. 미 환경청(EPA)이 지난주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량에 대한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수입차에 한정한 새 규제는 해외 자동차 업체에 더 불리할 수 있다.

다만 이 계획은 초기 단계로, 실행까지는 장애물이 남아 있다. EPA는 법적 타당성을 검토 중이며 일부 행정부 관료는 이번 계획이 극단적이어서 소송을 유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자동차업계 임원들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지난주 백악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수입차 규제 아이디어를 꺼냈으나, 업계가 먼저 변화나 지원을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시장에선 지난해 차량 1710만 대가 팔렸다. 이 중 4분의 3이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 등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국가에서 생산됐고 400만 대가량이 해외에서 생산돼 수입됐다. 이 중 일본 차가 170만 대, 한국 차가 82만 대, 독일 차가 50만 대 수준이다.

WSJ는 “백악관은 가능한 한 많은 국가에 새로운 환경 규제를 적용할 계획이지만, NAFTA 회원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생산된 차량이 포함될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보도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