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987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통해 “남·북한을 연방공화국으로 통일하고 중립국을 창설하자”는 방안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제안한 사실이 드러났다. 외교부가 30일 공개한 기밀문서에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그해 미·소 정상회담에서 이 문서를 레이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30년 전 북한의 ‘연방제를 통한 통일국가’ 제안이 관심을 끄는 것은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김정은의 언급 때문이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북핵의 폐기’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김일성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동의했다. 당시 북한은 핵개발 초기 단계였다. 따라서 북한 측에서 비핵화는 ‘남한에 있던 미군의 전술핵 철수’를 의미했다. 이후 북한은 북핵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김일성의 ‘비핵화 유훈’을 언급하면서 뒤에서는 핵 개발을 해왔다.

연방제 통일 역시 북한에서는 ‘선대의 유훈’이다. 연방제 통일도 들여다보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고려연방제 통일론’을 주장하며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3대 원칙으로 제시했다. 자주는 외세의 배격, 즉 미군 철수를 포함한다. 평화는 전쟁당사국인 북한과 미국의 평화협정 체결을 의미한다. 민족대단결엔 국가보안법 철폐와 공산당 합법화 등이 포함돼 있다. 사정이 이러니 당시 한·미 정부는 북한의 제안을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일축했다.

이는 현재진행형인 비핵화 논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장 김정은은 ‘단계적 비핵화’를 들고나왔다. 많은 미국의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언급한 ‘한반도 비핵화’ 발언은 북한 측의 비핵화가 아니라 미국의 핵우산 철폐, 혹은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북한에 ‘선(先)핵폐기’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혼란스런 입장을 밝혀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주장은 선대 유훈을 따라가는 과정의 첫걸음이다. 크게 보면 연방제 통일로 가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의 ‘비핵화’에 대한 초기 대응이 더욱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