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오형규 칼럼] 깐깐한 소비자 vs 허술한 유권자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돼지·소스·소금까지 취향 다원화
    '개인의 탄생', 정치·사회변화 압박
    정치판 짝퉁·진품 구분은 유권자몫"

    오형규 논설위원
    [오형규 칼럼] 깐깐한 소비자 vs 허술한 유권자
    프랑스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은 “246종이나 되는 치즈가 있는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겠는가”라고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옥스퍼드 정치인용구 사전에도 올라 있다. 국민 욕구의 다양성과 정치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비유다. 현재 프랑스에선 500종 넘는 치즈가 생산된다니 드골 시대보다 더 복잡다단해졌을 듯싶다.

    이런 관점은 한국에도 대입해 볼 만하다. 지난 10년간 소비 트렌드의 변화는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다. ‘깐깐한 소비자’ 덕에 한국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의 ‘테스트 마켓’이 된 지 오래다. 커피전문점이 편의점보다 많은 ‘커피 공화국’에선 이제 커피 원산지까지 따진다. 수입맥주와 수제맥주 빅뱅, 라면 브랜드의 폭발적 증가는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푸드 트렌드’ 전문가인 문정훈 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돼지고기 시장도 삼겹살 일변도에서 원산지, 품종, 숙성방식까지 따지는 분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숲에 방목해 도토리를 먹고 자란다는 스페인산 ‘이베리코 흑돼지’는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 수입량이 7만2000t으로 4년 새 4배로 급증했다.

    버크셔, 듀록 같은 돼지 품종을 일부러 찾아 먹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게다가 돼지고기를 소고기처럼 피가 비치는 ‘미디엄 레어’로 먹을 정도다. 냉장숙성에서 벗어나 바람숙성, 수중숙성 등도 관심사다. 마니아의 취향이 어느덧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이다. 문정훈 교수는 “일각에선 수입규제 목소리가 나오지만 스마트한 농민들은 소비자 변화를 ‘기회’로 여긴다”고 귀띔했다.

    소스, 소금 등도 변화가 뚜렷하다. 대형마트의 소스 매대는 된장, 고추장 자리를 유럽 소스, 동남아 소스, 중화 소스 등이 밀어내고 있다. 왕소금, 맛소금만 알던 주부들이 프랑스 게랑드, 미국 모튼 등을 줄줄이 꿴다. 치즈는 슬라이스에서 모짜렐라, 고메치즈로 옮겨가고, 건강·다이어트와 연관된 퀴노아, 렌틸콩, 햄프씨, 아마씨 등 곡물 수요도 크게 늘었다.

    ‘싸고 양 많게’라는 과거 관점으론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변화다. 소비자들은 쓸 데 없는 소비는 배격하지만, 비싸도 만족하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넘어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어야 팔린다.

    한국인 취향이 세분화·다원화·전문화 할수록 정치·사회의 변화 압력은 커질 것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를 넘어선 소비패턴은 글로벌화나 보편가치를 지향하게 된다. ‘주는 대로 먹어라’식 일방통행이 통할 리 없다. 이는 집단주의, 획일주의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개인의 탄생’과도 연관이 깊다.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용납하지 않는 ‘개인’의 존재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또렷이 확인했다.

    이렇게 소비자는 변했는데 좀체 안 변하는 게 한국 정치시장이다. 양당 중심의 독과점 체제는 마치 맥주시장의 오비와 하이트처럼 경쟁적 공생관계를 형성해왔다. 지난 총선 때 다당제가 됐지만 실상은 좌우·지역 구도 속에서의 분화일 뿐이다. 수시로 포퓰리즘 경쟁이 벌어지는 걸 보면 구태 그대로다.

    드골은 “정치란 정치인에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라는 말도 했다. 정치가 갈등 해결이 아닌, 갈등 그 자체인 한국에 딱 들어맞는다. 정치 후진성을 타파하려면 결국 정치시장 소비자(유권자)들이 깐깐해지는 길 외엔 방법이 없다.

    경영전략가 마이클 포터는 《경쟁론》에서 ‘까다로운 소비자’의 존재를 해당 분야 발전의 필수조건이자 국가경쟁력의 원천으로 봤다. 물건 살 때 가성비·가심비를 따지면서 정치인의 자질과 공약은 왜 따지지 않나. 지상낙원을 만들어주겠다는 허위와 짝퉁의 정치인을 솎아내는 것이나, 미래를 위해 당장 정치적 손해도 감수하고 국민에게 쓴소리도 할 줄 아는 ‘진품 정치’를 가려내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6·13 지방선거부터는 ‘충동구매’ 습관을 버리고 깐깐하게 따져보자.

    ohk@hankyung.com

    ADVERTISEMENT

    1. 1

      脫법정화폐 전성시대…금·은 고공행진 계속될까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금과 은의 국제 가격이 마침내 트로이온스당 각각 4500달러, 70달러를 넘어섰다. 올해 자산군별 수익률을 보면 은이 120%로 압도적이다. 다음으로 한국 주식(코스피지수) 75%, 금 70% 순이다. 한국 투자자가 국장(국내 증시)과 금에 투자했다면 올해 큰 수익을 냈을 것이다.금과 은은 전쟁 같은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질 때마다 안전자산으로 추천돼왔다. 미국 국채와 달러화 위상이 크게 약해진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최후 보루’(final draw)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였다. 실질 가치가 매장량 한계 등으로 보전돼 있는 점을 들어 인플레이션이 우려될 때마다 헤지 수단으로 선호됐다.올해 금과 은 가격은 지정학적 위험, 인플레이션 여부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올랐다. 세계지정학적지수(WGI)와 금 가격 간 상관계수를 보면 작년 말 0.8에서 올해 들어 0.3 내외로 떨어졌다. 지난 9월 이후 세계물가지수(WPI)와 금 가격 간 상관계수는 아예 마이너스로 전환했다.2011년 미국 셧다운(일시 업무정지) 종료 이후 금은 트로이온스당 1900달러에서 1060달러, 은은 30달러대에서 14달러대로 폭락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셧다운이 최장기로 길어졌음에도 종료 이후 급등하고 있다. 금과 은 가격이 전쟁과 물가, 국가 부도 여부와 관계없이 오르는 것은 가격 결정 요인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뉴노멀’이란 말까지 등장할 정도로 금과 은값을 올리는 요인으로는 탈(脫)법정화폐 거래가 우선 꼽힌다. 법정화폐 거래가 활성화되려면 중앙은행의 양대 기능이 확고해야 한다. 하나는 법정화폐 독점 주조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다른 하나는 물가 안정 목표가 잘 지켜져야 한다.올해 미국 중앙은행(F

    2. 2

      [시론] 포퓰리즘으론 원화 가치 못 지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위협하다가 지난주 정부의 구두 개입 이후 1400원대 초중반에서 등락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경제 여건을 감안하면 환율이 의미 있게 하락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보인 달러당 900원대 환율은 물론 1300원대 환율조차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그럼에도 현 정부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에 문제가 없으며, 최근 환율 상승은 투기 세력 때문에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인식에 머물러 있다. 이는 환율 상승의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보는 편협한 시각이다.한국과 미국의 펀더멘털을 단순 비교해봐도 그 격차는 분명하다. 2025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국은 2% 안팎 성장률을 유지할 전망이다. 기준금리 역시 한국은 연 2.5%지만 미국은 연 4.0~4.5% 수준이다. 굳이 한·미 관세협정에 따른 연간 200억달러 유출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성장률과 금리 모두에서 한·미 간 격차는 두 배에 가깝다. 이는 자본 이동과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더 큰 문제는 이런 격차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한다는 점이다.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생, 그리고 장기간 지연된 구조개혁 때문에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산업·노동·연금 전반의 구조조정이 멈춰 선 사이 경제의 기초체력은 약해졌는데, “펀더멘털에는 문제가 없다”는 진단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따라서 최근의 환율 상승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경제 펀더멘털 약화 속에서 미래의 환차익을 기대한 구조적 자본 이동의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3. 3

      [사설] 예산처장관 이혜훈 파격 지명, 재정 파수꾼 역할 기대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에 3선 의원 출신인 이혜훈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중구·성동을)을 깜짝 지명했다. 20년 이상 보수 정치권에 몸담아 온 경제통 발탁은 새 정부 출범 후 가장 의외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파격적이다.20곳이 넘는 정부 부처 중 한 곳의 장관을 지명한 데 불과하지만 함의가 만만찮다. 재정의 역할을 강조해온 이 대통령인 만큼 진보적 인사가 지명될 것이란 하마평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국가채무는 나라 운명과 직결된다’며 경제시스템 개혁, 합리적인 복지 지출을 강조해온 주류 경제학자 출신을 선택했다. 비주류 정치인 출신 대통령으로선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경제에서만큼은 협치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한다.외환시장 안정이 내년 경제의 급박한 화두로 부상하고 국가부채 급증에 대한 해외의 의구심이 점증하는 상황에서 재정 컨트롤타워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이런 시점에 미국 경제학 박사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재정 및 사회보험 분야를 주로 연구한 장관 후보자 지명은 시장 심리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후보는 정치 입문 후에도 재정·예산·조세 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재정 지속성, 단계적 복지 확대에 방점을 두고 활약해 왔다.주가가 오르고 기업 이익이 늘어나는 등 우리 경제는 최악의 위기를 벗어나고 있지만 글로벌 경제 환경 급변으로 위험 요인도 동시에 급증한 상황이다. 예산 기능 분리 후 기획재정부가 거시 관리에 허점을 노출하고 정치권과 용산에 휘둘리는 인상을 주며 시장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책적 소신을 지키기 위해 ‘친박’에서 탈퇴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