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조선의 갈릴레이' 과학사상 흔들어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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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의산문답》
“뭇 별들은 각각 하나의 세계를 갖고 있고, 끝없는 우주에 흩어져 있는데 오직 지구만이 중심에 있을 순 없다. 지구는 한없이 넓은 우주의 한 천체일 뿐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1731~1783)은 ‘무한 우주론’, 지구는 둥글다는 지구설(地球說), 지구 자전설(自轉說),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탈(脫)지구중심론’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 주장을 펼쳐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래서 그는 ‘조선의 갈릴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의 이런 주장들은 《의산문답》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의산문답》은 홍대용이 1766년 사신단 일원으로 중국을 갔다 온 뒤 쓴 자연과학 소설이다. 중국 동북지방의 ‘의무려산’을 배경으로 가상의 인물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의 대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성리학자인 허자는 전통에 매몰돼 진정한 진리를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실옹은 서양 자연과학을 받아들여 새로운 학문을 터득한 사람으로 묘사돼 있다. 실옹은 허자의 어리석음을 질타하며 깨우치도록 유도한다. 이를 통해 홍대용 자신의 과학과 실학사상을 서술하고 있다.
실옹은 허자에게 사람과 만물이 똑같다는 ‘인물균(人物均) 사상’,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무한 우주론’,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역외춘추론(域外春秋論)’ 등을 설파한다.
《의산문답》에서 제일 먼저 등장한 주제는 ‘만물은 동등하다’는 것이다. 허자가 인간우위 주장을 한 데 대해 실옹은 “인간과 자연계 모든 사물은 각기 자기 삶의 방식에 따라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려 한다는 점에서 차별이 없다”고 말했다. 인간이 다른 사물보다 더 귀하다는 주장은 자기중심적 사고에 불과하며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지구는 自轉하고 우주는 무한"
홍대용이 ‘만물은 동등하다’고 한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진지한 성찰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인간과 자연은 한 몸이 돼 유기적으로 살아가는 만큼 인간이 자연의 섭리, 운행 원리에 대해 마땅히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사물에 대한 주관적 입장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보는 객관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당시 조선 지식인들이 배척하던 서양 자연과학 이론과 자신의 주장을 편견 없이 받아들여달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홍대용의 이런 인식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대적 자연관과 맥이 닿아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물균 사상’은 사농공상이라는 신분 구획을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어 자연과학 주제를 다뤘다. 지구설과 자전설, 무한우주설 등이 핵심주제다. 월식 때 달에 비친 지구 그림자가 둥글고, 높은 곳에 올라가도 먼 곳을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했다. 또 “지구는 회전하면서 하루에 일주(一周)한다. 땅 둘레는 9만 리이고, 이 거리를 하루에 달리기 때문에 그 움직임은 벼락보다 빠르고 포환보다 신속하다”며 자전설을 제기했다. 9만 리(3만6000㎞)는 실제 지구 둘레(약 4만㎞)에 근접한 수치다. 당시까지만 해도 조선은 물론 동양에서도 지구가 자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홍대용의 주장은 대담하고 독창적인 것이었다.
"큰 의심이 없는 자는 깨달음도 없다"
허자가 “지구가 둥글다면 왜 사람과 사물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가”라고 질문하자 실옹은 “지구가 빠른 속도로 자전하기 때문에 지구 중심으로 쏠리는 힘이 발생하게 되며, 이 힘이 둥근 지구 위에서 사람들이 거꾸로 떨어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붙잡아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대용은 지금 태양계라고 부르는 것을 지계(地界)라고 했다. 우주에는 지계 이외에 다른 행성이 있다고 믿었다. 더 나아가 “넓은 우주 속에 다른 생명체도 존재할 것”이라고 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과 무한우주론은 조선 성리학적 체계의 근간을 이룬 ‘화이론(華夷論)’을 비판하는 논거로 삼았다. “둥근 지구에는 중심세계가 없고, 모두가 세계의 중심이다” “무한한 우주 속에 중국은 극히 일부분일 뿐” 등의 표현은 ‘화이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홍대용은 ‘역외춘추론’에서 지구상의 모든 국가와 민족, 지역이 관점에 따라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으며 각기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동등하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역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하며 조선의 독자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홍대용은 지구 공전 사실에 대해선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등 한계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는 조선시대 사상계를 지배하던 학문풍토와 기성 사상을 넘어 새로운 안목을 보여준 뛰어난 과학사상가임에는 틀림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천문연맹 소행성센터는 2005년 화성과 목성 사이에 새로 발견된 소행성 이름을 ‘홍대용’으로 이름 지었다. “큰 의심이 없는 자는 깨달음도 없다”는 지론으로 자연과학 연구에 매달린 홍대용을 연암 박지원은 “시대와 불화한 위대한 인물”로 평가했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1731~1783)은 ‘무한 우주론’, 지구는 둥글다는 지구설(地球說), 지구 자전설(自轉說),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탈(脫)지구중심론’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 주장을 펼쳐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래서 그는 ‘조선의 갈릴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의 이런 주장들은 《의산문답》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의산문답》은 홍대용이 1766년 사신단 일원으로 중국을 갔다 온 뒤 쓴 자연과학 소설이다. 중국 동북지방의 ‘의무려산’을 배경으로 가상의 인물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의 대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성리학자인 허자는 전통에 매몰돼 진정한 진리를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실옹은 서양 자연과학을 받아들여 새로운 학문을 터득한 사람으로 묘사돼 있다. 실옹은 허자의 어리석음을 질타하며 깨우치도록 유도한다. 이를 통해 홍대용 자신의 과학과 실학사상을 서술하고 있다.
실옹은 허자에게 사람과 만물이 똑같다는 ‘인물균(人物均) 사상’,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무한 우주론’,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역외춘추론(域外春秋論)’ 등을 설파한다.
《의산문답》에서 제일 먼저 등장한 주제는 ‘만물은 동등하다’는 것이다. 허자가 인간우위 주장을 한 데 대해 실옹은 “인간과 자연계 모든 사물은 각기 자기 삶의 방식에 따라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려 한다는 점에서 차별이 없다”고 말했다. 인간이 다른 사물보다 더 귀하다는 주장은 자기중심적 사고에 불과하며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지구는 自轉하고 우주는 무한"
홍대용이 ‘만물은 동등하다’고 한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진지한 성찰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인간과 자연은 한 몸이 돼 유기적으로 살아가는 만큼 인간이 자연의 섭리, 운행 원리에 대해 마땅히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사물에 대한 주관적 입장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보는 객관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당시 조선 지식인들이 배척하던 서양 자연과학 이론과 자신의 주장을 편견 없이 받아들여달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홍대용의 이런 인식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대적 자연관과 맥이 닿아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물균 사상’은 사농공상이라는 신분 구획을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어 자연과학 주제를 다뤘다. 지구설과 자전설, 무한우주설 등이 핵심주제다. 월식 때 달에 비친 지구 그림자가 둥글고, 높은 곳에 올라가도 먼 곳을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했다. 또 “지구는 회전하면서 하루에 일주(一周)한다. 땅 둘레는 9만 리이고, 이 거리를 하루에 달리기 때문에 그 움직임은 벼락보다 빠르고 포환보다 신속하다”며 자전설을 제기했다. 9만 리(3만6000㎞)는 실제 지구 둘레(약 4만㎞)에 근접한 수치다. 당시까지만 해도 조선은 물론 동양에서도 지구가 자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홍대용의 주장은 대담하고 독창적인 것이었다.
"큰 의심이 없는 자는 깨달음도 없다"
허자가 “지구가 둥글다면 왜 사람과 사물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가”라고 질문하자 실옹은 “지구가 빠른 속도로 자전하기 때문에 지구 중심으로 쏠리는 힘이 발생하게 되며, 이 힘이 둥근 지구 위에서 사람들이 거꾸로 떨어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붙잡아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대용은 지금 태양계라고 부르는 것을 지계(地界)라고 했다. 우주에는 지계 이외에 다른 행성이 있다고 믿었다. 더 나아가 “넓은 우주 속에 다른 생명체도 존재할 것”이라고 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과 무한우주론은 조선 성리학적 체계의 근간을 이룬 ‘화이론(華夷論)’을 비판하는 논거로 삼았다. “둥근 지구에는 중심세계가 없고, 모두가 세계의 중심이다” “무한한 우주 속에 중국은 극히 일부분일 뿐” 등의 표현은 ‘화이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홍대용은 ‘역외춘추론’에서 지구상의 모든 국가와 민족, 지역이 관점에 따라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으며 각기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동등하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역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하며 조선의 독자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홍대용은 지구 공전 사실에 대해선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등 한계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는 조선시대 사상계를 지배하던 학문풍토와 기성 사상을 넘어 새로운 안목을 보여준 뛰어난 과학사상가임에는 틀림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천문연맹 소행성센터는 2005년 화성과 목성 사이에 새로 발견된 소행성 이름을 ‘홍대용’으로 이름 지었다. “큰 의심이 없는 자는 깨달음도 없다”는 지론으로 자연과학 연구에 매달린 홍대용을 연암 박지원은 “시대와 불화한 위대한 인물”로 평가했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