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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이야기(8)] 백신애의 《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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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은주 선생님과 함께하는 한국문학 산책
    [문학이야기(8)] 백신애의 《적빈》
    적빈(赤貧), 몹시 가난하다는 뜻

    매촌댁은 가난하다. 몹시 가난하다. 집 한 칸, 땅 한 뙈기 없는 이 늙은이는 남의 집 일을 거들어주고 삯을 받고, 무명베 짜는 집에 가서 일해 주고 옷감을 받는다. 부지런히 일을 하니 한 입 걱정이야 하겠냐마는 장성했음에도 제 구실을 못하는 아들이 둘이나 있다. 별명이 돼지인 큰아들은 돼지같이 둔하고 철딱서니가 없는데 결국 술 때문에 사고를 일으키고 동네에서 쫓겨나 다른 동네에 따로 살게 된다. 둘째는 그래도 착실한 편이었는데 동네 알부랑자에게 속아 노름판에서 하룻밤 새 모은 돈을 다 날리고 자신도 알부랑자로 전락한다. 아들이 돈을 날리는 바람에 논 서너 마지기 사서 제 농사를 짓겠다는 매촌댁의 꿈도 물거품이 된다. 그러나 매촌댁은 낙심하지 않는다. 아니, 낙심할 틈이 없다. 그는 쉴 틈이 없다. 당장 큰며느리가 만삭인데 해산 후 먹을 양식 한 톨이 없다. 매촌댁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또 간신히 구한 얼마 되지 않는 양식을 큰며느리와 작은며느리에게 고루 나눠주기 위해 두 집을 오가며 종종걸음 친다. 간신히 집 주인에게 얻은 약간의 양식은 큰아들이 홀랑 먹어버리고 정작 출산일에 큰며느리가 쫄쫄 굶은 채 아이를 낳자 매촌댁은 큰며느리 주려고 숨겨놓은 보리쌀을 가지러 어두운 밤길을 또 종종걸음 친다.

    작품을 읽다 보면 우선 일제시대 하층민의 가난을 그야말로 몸으로 인식하게 된다. 가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은 큰며느리 벙어리가 아이를 낳는 장면이다. 벙어리는 진통으로 손으로 벽을 쥐어뜯으면서도 아이를 낳지 못한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운이 진하여 몸에 힘을 줄 수 없는 것이다. 매촌댁이 장 찌꺼기를 끓인 물을 벙어리에게 마시게 한 다음에야 간신히 출산에 성공한다.
    [문학이야기(8)] 백신애의 《적빈》
    작은며느리가 못 보게…

    [문학이야기(8)] 백신애의 《적빈》
    절대적 가난에서 받은 충격이 가라앉으면 이제 매촌댁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사실 굉장히 총명한 사람이다. 남의 집에 많이 다니면서 체득한 지혜겠지만 웬만한 서투른 의원보다 잔병을 잘 치료한다. 그리고 그의 놀라운 점은 며느리라고 아들보다 덜 귀히 여기지 않고 또 큰며느리와 작은며느리를 달리 대하지 않는 것이다. 집 주인이 벙어리 해산거리로 내어 준 쌀 한 되, 보리쌀 두 되, 명태 두 마리, 미역 한 쪽을 바구니에 담아 이고 큰아들네로 가던 그는 명태 두 마리를 살짝 꺼내어 가슴팍에 감춘다. 역시 출산을 앞둔 작은며느리를 주고 싶은 것이다. 또 동네 아이 잔병을 고쳐 주고 받은 보리쌀은 큰며느리 산후에 양식 떨어지면 주려고 부엌 나뭇단 아래에 감춘다. 이번에는 작은며느리 못 보게.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러 아들 며느리를 걷어 먹이면서도 못난 자식들 감정이 상하기라도 할까봐 조심하는 사람.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

    매촌댁은 노란 것, 흰 것, 검은 것이 한데 섞인 몇 카락 안 되는 머리를 가졌고 누덕누덕 걸어맨 적삼에 걸레 같은 몽당치마를 입고 다닌다. 동네 사람들이 핀잔주고 놀리면 이지러지고 뿌리만 남은 몇 개 안 되는 이빨을 드러내며 ‘히에’하고 고양이같이 웃어 보인다. 남의 집 일을 해 주고 한 끼 밥을 얻어먹을라치면 김치 찌꺼기와 간청어 꼬리와 장찌개 먹던 것과 보리 섞인 밥 한 그릇을 씹지도 않고 묵턱묵턱 삼킨다. 영락없는 걸인의 행색.

    작가는 32세에 요절… 재평가해야

    [문학이야기(8)] 백신애의 《적빈》
    그러나 매촌댁은 극빈에 패배하지 않았고 윤리적으로 타락하지도 않았고 따스한 사랑을 상실하지도 않았다. 숨겨둔 보리쌀을 가져와 돼지에게 주며 “이것으로 죽을 쑤어서 너는 조금씩만 먹고 에미만 많이 먹여라”고 천만당부를 하는 매촌댁. 그러고 난 귀갓길에 ‘반드시 내일 아침까지 굶고 자야 할 처지이므로 똥을 누어 버리면 당장에 앞으로 거꾸러지고 말 것’ 같아서 뒤가 마려운 것을 참고 어두운 길을 줄달음치는 매촌댁. 그에게서 역경에 맞선다는 의식도 없이 극한의 역경을 넘어서는 위대한 인간의 한 전형을 본다.

    저자 백신애는 《나의 어머니》로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첫 여성 당선자로 등단, 수십 편의 단편 소설과 수필을 발표했고 식민지 지식인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았다. 32세에 요절해 우리 문학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으나 2007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백신애 문학상’이 제정됐고 중학교 교과서에 소품 《멀리 간 동무》가 수록되는 등 재조명받고 있어서 다행이다. 《적빈》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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